민박집 주인이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민박집 주인의 생업과 글쓰기 병행기.
2015년 독립출판 한 <제주의 작은 작업실>은 절판 되었습니다.
책은 사라졌어도 글만은 남기고 싶어 브런치에 옮겨놓습니다.
쉽게 써라, 짧게 써라, 불필요한 수사를 빼라, 정직하게 써라...... 등.
작가 지망생이라면 수없이 읽고 들은 가르침일 것이다.
설령 대학에서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교양과목으로 작문 수업만 들은 사람이라면 위의 가르침을 기억할 것이다.
요즘은 글쓰기 강좌와 도서도 많아서 족집게 학원의 토익 고득점 비결처럼 문장력 또한 쉽게(?) 전수 받을 수 있는 기술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는 싶지만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시작을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문장력 강화 기술이 아니라 뻔뻔함일지도 모른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내 맘에 들든 안 들든 아랑곳 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뻔뻔함 말이다.
아이에게 꿈이 생기는 계기란 아주 명확한 순간의 충격이나 영감, 혹은 재능개발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부모의 재력이 아닐까.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한 어떤 계기도 없이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은 꿈이라고 하기엔 그리 간절하지 않았고, 아니라고 하기엔 글 쓰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백일장 수상경력도 한번 없는 주제에 내 어릴 적 꿈은 글 쓰는 사람이었고, 기술자를 선호하는 시골의 정서에 반하는 그 직업을 갖고 싶노라고 한 번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한 잡지사에 남몰래 원고를 보낸 적이 있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수기 공모전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응모를 했던 것이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제대로 안된 초딩 일기 치고는 꽤 많은 분량이었는데, 또박또박 눌러서 쓴 초딩글씨의 원고를 받아 든 심사위원의 표정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본인도 모르게 자기 이름에 먹칠을 당한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줄 방법이 없는 이 불효를 어찌하면 좋을까.
부디 0.1초의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 태워졌기를......
그래도 우편 접수를 위해 묵직한 서류봉투를 들고 우체국으로 가던 그 길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뿌듯했고 설렜던 그 길을.
꿈을 지속하기에 필요한 조건들이 내 성장기에는 없었다.
동기와 교육, 성과, 격려의 영양분으로 꿈을 키우기 보다는 도리어 위대한 소설들에 압도되어 주눅이 들었다.
글을 쓰는 것은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나를 매료 시켰던 문장들, 가슴 먹먹해 지도록 감동적이었던 이야기와 같은 글을 나는 쓸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갈 수 없는 세계로 발을 디딜 수 없었던 심정은 신분의 장벽에 가로 막힌 사랑처럼 애달팠다.
그저 읽는 즐거움만으로도 이 인생 충분히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인생은 아름답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 속하게 된 조직의 감성은 사막에 버려진 꼴뚜기젓처럼 메말라 있었다.
나도 함께 메말라 갔고, 작가를 향한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곳을 떠났다.
제주도에 온지 2년이 지나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니 번듯한 작품은 없다.
언젠가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는 자신도 없다.
다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지나친 경외감을 버린 것뿐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서 뭐라도 꾸준히 써야지 하고 작정한 것이다.
이 섬에서 나는 삶을 더, 더, 더 가볍게 대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글을 쓰기 위해서 꼭 비장한 각오 따위를 할 필요가 없다거나, 숨 쉬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듯이 글도 써지는 대로 쓰기로 한 것 말이다.
그런 진지하지 않은 태도 때문에 자뻑이라는 지병을 얻게 되었지만, 잠시라도 방심하면 어느새 진지해져 버리는 삶을 가볍게 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비장하고 진지한 자세가 삶을 자주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꿈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늘 강요당해 왔다.
물론 실패하더라도 과거가 되어버린 이 현재를 보상받을 길은 없다.
세상에는 꿈을 이루는 사람보다 좌절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삶의 미학처럼 강요되는 희생의 양과 질, 소수의 성공 사례를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꿈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건, 가진 재산을 털어서 로또를 사라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무책임인 것 같다.
인생이 무엇인지를 몇 마디 말로 정의하고자 하는 오만과 무지를 일삼는 꼰대들을 멀리할지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자라서 그런 꼰대가 될지 말지어다.
꿈을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은 진지하고 비장하고 절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글을 쓰고는 싶지만 쓰지 못하는 것은 무언가를 희생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내가 그랬다.
잘 할 자신이 없어서, 잘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러다가 평생 희생만 하다 죽을 것 같아서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삶을 가볍게, 더 가볍게 대해야 했고, 자뻑의 자세로 일관하지 않는다면 삶은 다시 금방 진지해져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