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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Feb 25. 2020

우리들의 글쓰기에도 봄이 올까 3/3

글쓰기, 창작, 출간, 독립출판에 대한 경험과 고민에 대해서 정리한 긴글

나는 장편소설도 썼다. 무려 스릴러 장편소설으로, 독립출판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사실 등단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장편소설을 써봐야 출간을 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근데 그냥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걸로 장편소설을 쓰고 싶었다.


장편소설 한 편 쓰는 게 사실 쉬운 건 아니다. 일 년 가까이 정신적인 에너지를 이 이야기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근데, 이 힘든 일을 하는 데 어떤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등단이나 공모전을 위해서는 단편소설을 써야 했을 것이다. 물론 장편소설 공모전도 있긴 하지만 그 수가 적고, 장르도 한정되어 있다.


어쨌든 등단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주 전략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 쉽진 않겠지만 한국문단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미학적 취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하고, 심사위원이 될 확률이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는 문단 인사들의 과거 심사평을 분석해야 한다. 그래서 비교적 당선에 유리한 주제를 발굴해야 하고, 그걸로 단편소설을 써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1년에 그런 단편소설을 몇 십 편씩 쓰는 습작의 시간을 몇 년 동안이나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방금 말한 그런 전략이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등단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그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낙타만이 소설가가 되는 게 현실이다. 근데 그건 여러 측면에서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오래 전, 청소년 때부터 한국문학 골수 독자였던 한 사람으로서의 의견이다.


나는 오랫동안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설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소설을 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소설을 쓰면 소설가지, 꼭 등단이라는 사설 자격증 같은 걸 따야 하나, 라는 다소 건방진 생각으로.

어떤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썼다. 이건 아마도 소설 독자로서의 오랜 시간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소설작법 수업 같은 거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나로서는 오로지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쓴다는 것이 유일한 등대였다.

문단이라는 업계가 선호하는 미학적 취향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인물, 내가 좋아하는 구성, 주제, 문체, 호흡, 리듬 등등으로 말이다.


그렇게 쓴 나의 소설은 기성의 문법을 지키지 않은 함량미달로 평가받을 게 뻔하다. 물론 쓴 사람에 따라서는 장르를 파괴한 놀라운 작품이 되기도 한다....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쨌든 독자로서의 시간과 소설가가 되고 싶은 순수한 열정이 장편소설을 쓰게 했다고 믿는다.


나는 오랫동안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그 꿈은 너무도 높고 두꺼운 벽처럼 느껴졌었다. 그건 바로 업계가 정해놓은 룰 때문이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드니까 소설을 쓰면 소설가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꿈이 이루어져 버렸다. 너무도 쉽고 허무하게.


에이, 지 혼자 소설 한편 썼다고 소설가인가, 라며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등단이라는 검정시험을 통과해야만 소설가가 되는 지금, 소설 시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싶다. 대중소설 분야에서 한국소설은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나처럼 이런 식으로 세상에 내놓은 소설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바늘구멍을 통과하신 분들 말고는 그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다.


생업의 피로를 등에 지고 퇴근 후에 식탁에 앉아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렇게 쓴 소설은 대부분 그분들 노트북 안에서 잠만 자다가 없어진다. 근데 그렇게 쓴 소설을 조용히 세상에 내놓고, 그 소설이 조금씩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읽히게 되고, 그 중에서 몇 편은 보석 같은 작품으로 알려지고 재조명 될 가능성은 아예 없는 걸까. 나는 적어도 몇 만 분의 일 정도의 가능성은 있다고 믿는다.


소설이든 에세이이든, 글쓰기를 가로 막는 건, 다 쓴 후에 이 글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계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써봐야 출간은 못한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면 나는 장편소설을 못 썼을 것이다. 아마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쓰고 싶어서 썼고, 쓰고 나니 이 세상에는 독립출판이라는 세계가 전보다 더 커져 있었다.


내가 쓴 글을 어디에도 발표할 곳이 없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근데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나 스스로 책을 만들고 팔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독립출판물은 동네의 작은 서점을 통해서 유통할 수 있고, 본인의 SNS를 통해서 직접 팔 수도 있고, 최근에 큰 화제가 되었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낸 이슬아 작가처럼 이메일로 한편의 글을 배달하는 자신만의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다.


쉽다는 건 아니다. 파는 건 쓰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나는 뼈저리게 자주 느꼈다. 나는 직접 책을 팔면서, 이 시장은 정말 꽁꽁 얼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정말 책과 관련된 모든 건 꽁꽁 얼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메이저 상업 시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나 스스로 내 글을 팔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글쓰기에 필요한 커다란 동력이 아닐까.


좋은 작품은 메이저 상업시장에만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절대적인 수로만 따진다면야 맞는 말이다. 시장의 크기가 다르니까. 하지만 메이저 상업 시장이 요구하는 콘텐츠만 발표된다는 건, 어떤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출간되는 작품의 폭이 좁아지고, 그러면 독자들의 선택의 폭도 좁아지고, 그래서 시장이 또 작아진다. 현재의 출판시장처럼. 작아지다 작아지다 지금만큼이나 작아졌다.


이런 독립출판 시장뿐만 아니라, 작가 개인이 만든 플랫폼을 찾아 나서는 독자가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알라딘이나 예스24가 편하긴 하다. 근데 좀 불편하지만 작가의 SNS를 찾아가서 직접 책을 주문을 하거나, 동네의 작은 독립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열성적인 독자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 되기 위해서는 동네의 작은 책방을 도와주세요,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응원해 주세요, 라는 감정적 호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설득력이 없어진다.

무엇보다 메이저 상업시장이 아닌, 이런 독립된 작은 시장에도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 알려진 작가, 유명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좋은 작품이 얼마든지 많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야 한다.


글을 쓰고 그 글을 발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쉬운 시대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걸 파는 게 큰 숙제가 되었다. 현재 독립출판 시장에는 작가체험활동 정도의 성과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과이고, 시장의 관점으로 보면 어쨌든 좋은 작품이 많이 발표되고 많은 작품이 팔려야 한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작은 책방들을 이용하고, 작은 책방이 운영하는 온라인 스토어를 이용하고, 작가 개인의 SNS나 블로그를 찾아가서 책을 사고, 댓글도 주고받고 그러는 게 일상적인 재미가 되면 좋겠다. 독자와 작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지금보다 더 새롭고 인상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독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다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나 나나 지금보다는 좀 더 따뜻한 환경에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를 멈추지 말고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 좋겠다. 기성출판시장이든, 독립출판시장이든 상관없이. 어떤 글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기성출판시장에 어울릴 거고, 또 어떤 글은 독립출판 시장에 더 어울리기도 할 것이다. 내 글이 어떤 시장에서 수용되느냐의 문제는 작품의 좋고 안 좋음의 문제가 아니다. 이거든 저거든 상관없이 꾸준히 쓰시고, 꾸준히 발표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 쓰다가 멈춘 글이 있다면, 꼭 완성하시기를 바란다.


<끝>.



세 편으로 나누어서 긴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방법론이 아니라, 글쓰기에 필요한 작은 용기를 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쓰기에는 정말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자주 주눅 들고, 자주 의기소침해지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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