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창작, 출간, 독립출판에 대한 경험과 고민에 대해서 정리한 긴글
글을 말처럼
나는 기본적로 글은 말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세이이든 소설이든 독자가 내 글을 이해하는 데 엄청난 집중과 노력을 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굳이 어렵게 써서, 글이란 자고로 한 자 한 자 곱씹으면서 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도 있더라.
뭔 말만 하면 빵빵 터지게 하는 친구 한 명쯤은 있을 거다. 그 친구와 마주 앉아서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자.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데, 너무 재밌다. 절망과 슬픔과 분노를 유머로 변환하는 장치가 탑재된 친구 같다. 하는 말마다 재밌고 웃겨서 빵빵 터진다. 엄청나게 집중하지 않아도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독서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서점에 가서 아무 거나 집은 책이 대부분 그렇게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면, 국민 독서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현재 비독서인에게 책은 굳이 시간까지 내서 읽을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어느 정도 지적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독서의 길로 접어드는 데에는 작은 장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근데, 말에 비해서 글은 좀 불리하다. 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과 손짓 등이 있다. 그런 보조적인 수단이 전달력을 높인다. 그리고 친구랑 만나서 오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 하는 데 우리 가족 구성원부터 부모님의 직업과 성격 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친구라면 그런 건 다 알고 있을 테니까.
그에 비해 글은 아주 불리하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글에는 말처럼 보조적인 수단이 전혀 없다. 오로지 글만으로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배경을 설명해야 하는데, 그걸 자세히 해야 하지만, 너무 장황하면 또 지루하다.
그래서 글은 말보다 더 단어 선택이 중요하고, 문장이 간결해야 하고, 표현이 고루하면 안 된다. 그리고 마치 말을 하듯이 읽는 사람의 호흡과 리듬을 생각해야 한다.
글에 마치 표정을 불어넣듯이, 손짓을 하면서 말을 하듯이, 그렇게 글을 쓰면 독자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출간제안서? 사실 그건 출간심사신청서다
이제, 나의 출간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몇 년 전에 내가 낸 첫 책은 <제주에서 2년만 살고 싶었습니다> 라는 제목의 에세이다. 제목을 들으면 아시겠다시피, 제주로 이주하고 약 2년 동안의 생활에 대해서 쓴 에세이다.
고백하자면, 원고를 다 쓰고 그 책을 출간하기까지는 일 년 넘게 걸렸다. 다 쓴 원고와 함께 출간 제안서를 몇몇 출판사로 보냈는데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왜? 내 글이 별로인가?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 출간이 어려운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2013, 14년은 제주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훨씬 뜨거운 때였다. TV만 틀면 제주도와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던 때였다. 그리고 제주도 이주에 대한 정보서와 정착기, 여행기 같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었다.
아마도 나도 그때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제주로의 이주를 준비하면서 겪은 좌충우돌 정착기나, 이주 후의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제주생활에 대해서 썼다면 비교적 출간은 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주도 이주 이슈가 뜨거웠던 그 당시, 출판사에서는 제주도로 이주한 사람이 완성한 단행본 한 권 분량의 원고가 간절히 필요했다. 딱히 셀링 파워 있는 작가가 아니어도 괜찮아 보였다.
근데 나는 제주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여유롭고 낭만적이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도시에서의 불만족이 반복되고, 상처도 반복되었다. 사람들한테 시달리고, 밥벌이 하느라 힘들고.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주변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제주에서 사는 걸 힘들어 하기도 하고, 부동산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집을 짓거나 고치면서 업자에게 돈을 떼이는 일도 많았다. 미디어에서는 절대로 조명하지 않는 이야기들이이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써야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제주생활이 그리 여유롭고 낭만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밥벌이 하느라 팍팍하게 산다, 라는 내용의 에세이를 썼다.
근데 그건 사람들이 ‘제주도 이주’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에세이였던 거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상품성이 전혀 없다고 여겼을 거다. 그래서 투고하는 출판사마다 번번이 거절을 당했을 거다.
그래도 이 나라에 출판사가 이렇게도 많은데, 내 책 내 줄 곳이 한 군데도 없을까 싶어서 계속 투고를 했다. 원고를 고치고 다듬어서 또 투고를 하고, 또 고치고 다듬고 투고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정말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한 출판사와 만나 출간을 했다.
근데, 결과적으로는 출간을 하게 되었지만, 정말 운 좋게도 출간을 하게 된 건, 그 글의 무대가 다름 아닌 제주도여서라고 생각한다.
그 책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살면서 중요한 건 사는 장소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에 필요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근데 만약 내가 제주가 아닌, 사람들의 관심이 별로 없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쓴 글이었다면 아마도 영영 출간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업시장에서의 출간은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 상품성이 가장 큰 조건이다. 좋은 글, 그 글이 담고 있는 사회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야 무엇보다 팔릴 만한 글을 책으로 만들 거다. 어떤 글이 팔리는 글인지를 아는 건 정말 어렵고도 쉬운 일 같다. 적어도 ‘팔리는 글’ 이라는 목표가 명쾌하긴 하니까 투고를 준비 중인 분이라면 고민과 공부를 거듭하여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
작년에 출간한 <잘 지내요 고양이>라는 에세이 역시 출간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투고를 하고 몇 번의 거절을 당하긴 했지만, 비교적 쉽게 한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근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출간이 미뤄지다가 결국 계약이 해지되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의 시간이 지나간 것 같다. 상심도 하고 짜증도 나서 이제 투고는 다시는 안 해야지, 라고 마음먹고 독립출판을 했다.
독립출판을 하며 판매에 대해서는 큰 기대는 없었다. 워낙에 작은 시장이니까. 그냥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원고에 대한 의리였다. 너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줄게, 의 의미.
근데 당황스럽게도, 이 작은 시장에서도 이 책이 잘 팔리더라. 정말 아무 기대도 없었는데. 정말 10권만 팔려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출간을 했는데, 제주에 있는 서점에서만 몇 백 권이 팔렸다.
나는 아! 이 글이 상업적으로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래서 일 년 후에 다시 투고를 했거, 다시 몇 번의 거절을 당하고, 곧 내 글을 너무너무 좋아해 주신 출판사 담당자를 만났고, 그렇게 상업기성출판 시장에서 출간을 하게 되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해서 출간을 하려면 거절에 면역이 생겨야 한다. 나는 거절을 아주 밥 먹듯이 당해서 아무렇지도 않다. 도리어 거절의사를 명확하게 밝히는 게 더 좋더라. 아무 답이 없는 것보다는. 거절당하는 걸 두려워하거나 불쾌해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더라. 근데 이건 비지니스다. 만약 거절당하는 게 불쾌하다면 당신은 작가로 살아갈 수 없다. 이건 비지니스다. 전단지를 100장은 돌려야 두어 명 매장에 찾아온다. 수많은 거절의 연속, 그게 비지니스 세계의 일상이다.
원고와 함께 보내는 출간제안서는 사실 상 출간심사 신청서다. 내 글이 출간이 될 수 있는지 심사해 주세요, 라는 신청서. 그리고 그 신청서는 매번 불합격 통보로 되돌아 왔다. “안타깝게도 우리 출판사와는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는 정중한 내용의 메일로.
나는 만약 차기작을 출간하고 싶으면 그 지난한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또 할지 말지 모르겠다. 어떤 작품을 쓰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다음 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