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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Feb 09. 2020

우리들의 글쓰기에도 봄이올까 1/3

글쓰기, 창작, 출간, 독립출판에 대한 경험과 고민에 대해서 정리한 긴글

몇 년 동안 글쓰기와 출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글쓰기와는 떨어져 생업 쪽으로 에너지를 좀 더 기울이고 있습니다. 창작과는 한발짝 떨어진 지금, 글을 쓰고 출간을 한 그동안의 경험과 고민과 생각들을 나누고 싶어서 긴 글을 씁니다. 물 밖에 나와야 비로소 물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창작이라는 것에서 한발짝 떨어져서야 그동안 내가 뭘 한 것인지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제주에 와서 산지 9년이 되었다. 직장생활의 피로를 피해서 온 제주에서 나는 작가가 되었다. 오랜 시간 독자였을 뿐, 글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였던 내가 작가가 된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이건 “글! 이렇게 쓰면 작가가 된다” 같은 성공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길을 찾았던, 알려지지 않은 한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이다.


글을 왜 쓰냐고?

먼저 “쓴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최근에 출간한 <잘 지내요 고양이>라는 에세이 전에도 나는 몇 권의 책을 냈다. 에세이도 냈고, 스릴러 장편소설을 써서 독립출판을 하기도 했다. 어떤 책에 공저로 참여하기도 했고,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따져 보니까 최근 몇 년 동안 이런저런 작품을 참 많이도 썼더라. 근데, 이렇게 나는 작가로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집필노동에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별 이익을 보지 못했고, 출간을 몇 번 했다고 해서 작가로서의 앞날이 밝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글을 썼는데, 가끔은, 내가 글을 쓰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람, 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게 대체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무력감에 빠졌다.


처음에는 단지 글을 쓰는 게 좋았다. 그 다음에는 출간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체 인생이 별로 달라지지도 않는데 이렇게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이지, 라는 생각과 싸워야 하더라.


오래 전에, TV에 김영하 소설가가 나오는 강연 프로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얼마 전에 한 청년이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너무 어렵기도 하고, 어찌 보면 쉬운 질문 같기도 하다. 만약 내가 뭔가를 말해줄 수 있는 입장이라면, 꿈을 꾸는 청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 해줄 것 같다. 최대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근데 그분은 그러지 않으셨더라. 그분은 그 청년에게, 소설가 같은 거 할 생각 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했다. 소설가는 되는 것도 어렵고, 되어도 돈을 별로 못 버니, 소설가 같은 거 할 생각 하지 말고 다른 직업을 알아봐라, 라고 말이다.

좀 황당한 답변이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근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건 정말 명쾌한 답이더라.

글 같은 거 써봐야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근데 그래도 쓰고 싶으면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진짜다. 쓰고 싶으면 쓸 수밖에 없다.


김영하 작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소설을 쓰고 싶다면 써라.”

이 말이 의미하는 건 이런 걸 거다.

되기도 어렵고, 되어도 먹고 살기 어려운 게 바로 소설가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고 싶다면 소설을 써라, 라는 거다. 정말로 소설은 그런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나는 도대체 왜 쓰는가, 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딱히 써야 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나는 왜 쓰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 말고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가 없더라. 그냥 쓰고 싶은 마음 말고는 별다른 이유가 없더라.


물론 열정이라는 것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어떤 경제적인 보상 없이 열정만으로 글을 쓰면 결국 지치고 힘들어서 멈추는 때가 올 거다. 근데 그때 멈추면 어떤가? 그러다가 또 쓰고 싶은 때가 되면 또 쓰면 되는 거다.


열정의 유통기한을 연장한다거나, 식어버린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또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그거에 대해서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글쓰기에 대한 열정의 정체를 굳이 밝힐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게 내가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이고,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고민이다. 그냥 열정 그 자체가 이유다.



재능, 그걸 누가 알아?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재능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없나봐.” “글을 쓰기 시작한지 1년이 되도록 A4지 50매를 못 썼어.” “난 역시 재능이 없어. 난 안 될 건가봐.” 이렇게 자책하시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재능이란 대체 뭘까?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우리는 구분할 수 있을까?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단행본 한 권 분량의 글을 단 며칠 만에 휘리릭 써버리는 사람일까?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


나는 재능이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눕자마자 잠들 것 같다. 근데 씻고 나와서 바로 식탁에 앉아서 글을 쓴다.

누가 쓰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써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 취미생활이라고 하기에는 쉬운 것도 아닌 그 일을, 그냥 하고 싶은 것. 나는 그게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좀 다르게 말하자면, 나는 열정이 곧 재능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을까, 없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걸 알 방법이 없더라. 그래서 나는 그냥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 믿음을 반박할 단서도 없으니까. 나는 지금도,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막상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에 멈추고 만 사람도 있다. 한참을 쓰다가 방향을 잃어버려서, 멈춘 후에 도저히 다시 시작할 엄두가 안 나서. 그럴 때, 아! 나는 재능이 없나보다, 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재능이 없나보다, 라는 생각에 빠지면 나는 정말로 재능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내가 재능이 없다는 믿음을 반박할 단서도 어디에도 없으니까.

나에게 재능이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쓰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질 거고, 그러면 어떻게든 쓰기 위해서 자리에 앉게 될 거다.



초고는 원래 똥이다

글쓰기 방법론에 관한 책들이 강조하는 몇 가지가 있다. 문장은 짧게 써라, 쉽게 써라, 고루한 표현을 피해라,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 마라 등등. 근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설령 정교하게 이론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독자로서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지를 다 알고 있다. 어떤 글에 감동 받은 적이 많고,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우리는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지를 다 알고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쓰는 글의 주제를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이다. 아마도 쓰고 있는 글이 진도가 안 나가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일 거다. 그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할 말이 별로 없는 거다.

예를 들어서, 내가 건강을 위해서 스쿼트운동을 시작했다. 무릎을 굽혔다가 펴기를 반복하는 운동을 한 달 정도 하니까 허리에 힘이 들어가고, 자세가 교정되는 것 같다.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소화도 잘 되는 것 같다. 짧은 시간에 정말 놀라운 효과가 생기더라. 그래서 나는 이 놀라운 효과에 감격하여 스쿼트 전도사가 되기로 했다. 이 운동에 대해서 책을 쓰기로 했다.


근데 겨우 그 정도 경험만으로 스쿼트에 대해서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아마 A4 한 장이면 끝날 거다. 운동을 시작한 후 한 달 동안의 과정과 몸의 변화에 대한 사실관계의 순차적 나열에 그치고 말 거다.

적어도 이 주제로 단행본 한 권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 나의 자세가 어디가 문제인지, 하루 중 내가 그 잘못된 자세로 얼마나 오래 있는지, 그 잘못된 자세를 그리 오래 유지해야 하는 이 나라의 노동환경은 얼마나 불합리한지, 그리고 이 운동으로 인한 변화가 생활에 어떤 활력을 가져왔는지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스쿼트에 대해서 마구마구 썼다고 생각해 보자. 할 말이 엄청 많았을 것이다. 무릎을 굽히는 각도부터, 그 운동을 하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내가 이 운동을 하면서 본 드라마 이야기까지 하면 할 말이 엄청 많았을 거다. 이 나라 노동운동의 역사와 재활의학의 발달과정에 대해서도. 그렇게 마구마구 써놓은 글을 보면 흐뭇할 거다. 우와! 내가 글을 이만큼 썼어, 라고 감격하며.


근데 그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면 어떨까? 슬프게도, 엉망진창일 거다. 거의 100프로 확신한다. 분량만 많고, 재미는 없고, 도대체 이런 것까지 왜 썼지, 너무 쓸데없는 것까지 쓴 것 같고. 대부분 여기서 또 좌절 한다. 아! 역시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없나봐, 라며.


근데 그건 좌절할 일이 아니다. 그건 좌절할 일이 아니라, 성공한 거다. 초고를 썼으니까. 초고는 원래 엉망진창인 거다. 도저히 남한텐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게 바로 초고다.

는 개인적으로 글을 쓴다, 라는 건, ‘초고를 수정한다’ 라는 것과 같은 의미로 여긴다. 초고를 쓰는 것보다는 그걸 고치고 다듬는 데에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니까.


사실은 그 엉망진창인 초고를 수정하는 것부터가 전쟁처럼 길고도 힘든 과정이다. 바로 여러 강연이나 책을 통해서 배운 글쓰기 방법론이 큰 도움이 될 거다. 문장은 짧고 쉽게,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 않고, 고루한 표현을 피해서, 전후 맥락과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등등등등. 그렇게 다듬어 가야 한다.


그러니까 엉망진창인, 이걸 쓴 본인이 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그 초고를 쓰기 전까지는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떤 강연이나 책을 통해서 배운 그 글쓰기 방법론은 엉망진창인 초고를 써야만 그때 비로소 필요한 거다.


그래서 나는 쓰레기를 쓴다, 아니, 나는 똥을 싼다, 라는 생각으로 초고를 쓴다면 완성하지 못 할 글은 없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쓰려고 하거나, 쓰다가 멈춘 글이 있다면, “똥”이라는 단어를 꼭 기억하시라. 그리고 그 글, 꼭 완성하시라.



다음 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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