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며느리 인권'

by 손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하면 같이 떠오르는 주제가 ‘고부갈등’이다. 도서관에서 ‘며느리 인권’이라는 제목의 이 책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이유도 나 또한 며느리로 살면서 고부갈등을 겪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기엔 놀라움을 자아낼 만큼 스릴러 소설에 가깝다. 읽는 내내 ‘며느리 인권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며느리 인권을 지키기 위해선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맴돌았다.



이 책을 읽다가 신혼 초와 산후조리 때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최고조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바보같이 대처한 남편이 새삼 괘씸해서 괜히 옆에 있던 남편을 등짝 스매싱하고 째려보았다.



남편의 중재를 기대했지만, 중재할수록 역효과가 나고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만 커졌다. 결국 남편이 중간 역할해주길 포기하고 내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게 되었다.



의외로 중간에서 센스 있게 대처하는 남편을 정말 찾기 힘들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주말마다 밥 먹으러 오라는 시어머니가 있다. 아들에게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밥 먹으러 오라고 통화할 때, 일하는 며느리는 이번 주말만큼은 집에서 단둘이 푹 쉬고 싶다. 아내의 기색을 살핀 센스 있는 남편은 ‘이번 주말에 회사에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한다’고 못 가는 이유를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시어머니는 섭섭해하겠지만 아들의 사정엔 순순히 수긍한다. 며느리가 가기 싫다고 할 때처럼 괘씸해하진 않기에 파국으로 치닫지도 않는다. 이렇게 그들은 잠시나마 평화롭다. 물론 이러한 임시방편용 핑계가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 주진 않는다. 어느 순간에는 매정하게 들리더라도 시어머니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해야 할 때가 온다. 그럼에도 이러한 남편의 대처는 퍽 센스 있다. 누구 하나 나쁜 사람 만들지 않고 감정 상할 일도 없다.



하지만 센스 없는 남편의 경우 “자기야, 엄마가 이번 주에도 밥 먹으러 오라는데? 괜찮아?”라고 물어본다. 수화기 너머로 시어머니는 듣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거기서 “응, 안 괜찮아. 나 이번 주는 피곤해서 쉬고 싶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며느리가 몇이나 되겠는가?



결혼은 성인 대 성인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결혼의 정의를 집안 대 집안의 결합쯤으로 생각하고 도무지 두 성인이 독립해 새 가정을 꾸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결혼한 자식들에게 부모들은 이제껏 키워준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식으로 효도를 강요하는데 문제는 직접 키워준 자식이 아닌, 자식의 배우자에게서 받으려 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대리 효도가 만연해 있고, ‘안부전화’도 그중 하나의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 요즘엔 장서 갈등도 대두되고 있긴 하지만 고부갈등에 비하면 그 역사가 길지 않은 듯하다. 주기적인 안부전화를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사례는 차고 넘치지만, 친정에서 사위에게 안부전화를 요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고부갈등과 장서갈등의 원인은 독립하지 못한 성인이 결혼해 배우자까지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데 있다.



자식이 성인이 돼서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뤘으면 못 미덥고 걱정되더라도 알아서 하게끔 놔두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그렇게 대담한 부모는 한국 가정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자식들 또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 어찌할 수 없을 때에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도 없이 처음부터 부모에게 의지하고 부모를 ‘과소비’하는 문제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자식들이 결혼할 때 큰 빚을 지고 신혼집을 마련하는데, 이때 부모가 집값을 보태주면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부모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란 쉽지 않다. 큰돈을 썼으면 아무리 그 대상이 자식이라도 본전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내가 이만큼 보태줬는데 이 정도 효도를 바라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이야?’라는 보상심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성인이 저축한 돈으로 천정부지의 집값을 감당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친정 엄마의 손주 육아를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장성한 자식들의 그릇된 인식도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도 힘든 게 육아인데 황혼육아는 쉽게 친정엄마를 지치게 하고 육아 갈등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친정엄마와 젊은 세대의 육아 방식이 다른데, 서로의 방식만을 고집하다 보면 서로 마음이 상한다. 친정엄마의 경우, ‘내 방식대로 육아도 못하고, 나는 그냥 애만 봐주란 거냐.’란 불만이 생길 수 있고, 딸의 경우 친정엄마의 잦은 잔소리와 육아 간섭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라 맡길 사람은 친정엄마뿐이다. 경력 단절될까 봐 친정엄마까지 육아 인력으로 끌어다 쓰고 서로 전투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친정엄마도 힘들게 손주를 보다 보면 보상심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한창 힘들게 애 키워놨더니 다 컸다고 나 몰라라 하냐.‘며 서운함을 내비치고 좀 더 자주 왕래하길 바라는 것이다.



자식들 또한 후반전 인생을 즐겨야 하는 부모님에게 무리한 육아 노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항상 감사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자립하는 연습을 거치고, 무리해서 과도한 빚을 지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자립하도록 놓아줄 수 없다면 자식이 먼저 자립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돼서 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시점부터는 독립해야 하지 않을까.



고분고분한 자식들에게 부모는 더더욱 바란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는 옛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점을 분명히 하고 부모가 아무리 화내고 삐지고 죄책감을 유발해도, 끝까지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 마음 약한 자식들은 부모가 죄책감을 유발할 경우, 본인들이 힘들더라도 ‘부모님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나, 우리가 좀 맞춰드리자’며 꾹꾹 참고 효도를 수행한다. 누구를 위한 효도인가? 부모에게도 어느 정도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부모들은 이상한 특징이 있다. 한창 자라날 때 자식들이 부모의 애정을 제일 필요로 할 때는 손이 많이 간다고 귀찮아하고 나 몰라라 하다가, 다 큰 자식이 독립해 나갈 때에야 갑자기 자식들에게 과도한 관심을 쏟고 자식의 독립을 방해한다.



갑자기 같이 쇼핑을 가자 하거나 친구 같은 관계를 요구하기도 한다. 연락을 자주 하길 원하고 사사로운 일상을 다 공유하길 바란다. 결혼한 자식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식 쪽에서 먼저 그 정도 일은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도 되는데 뿌리 깊이 박힌 ‘효 사상’이 발목을 잡는다. 부모가 아무리 선을 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해도 자식 입장에서 무조건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은 폭력에 다름 아니다.



‘고부갈등’은 수십 년간 따로 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남편’ 때문에 갑자기 한 가족이 되어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결혼하기 전 시어머니는 마냥 꼼꼼하게 주변 사람을 챙기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분이었다. 수많은 고부갈등의 사례를 들어왔던 터라 긴장하기도 했지만 나는 시어머니와 잘 지내고 싶었다. 시어머니에게 이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자 노력했다. 신혼 초에는 매일매일 시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걸어 할 말도 없는데 한 시간씩 통화하곤 했다. 우연히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모습을 본 친정엄마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무뚝뚝하고 애교 없는 성격이었던 내가 없는 애교를 부리고 이쁨 받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끊임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은 상대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본인이 가지지 않은 것보다 더 과한 노력을 하게 되며, 스스로 ‘을’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잘 보이고 싶고 이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픈 욕심 때문에 자기 본연의 모습을 깎으면서까지 상대에게 맞추는 상태는 언젠가 터지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남편 하고는 결혼 전 연애하면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치열하게 싸우며 조율해 왔다. 시어머니와는 갈등을 조율하고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이 생략된 채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가족이 되었으니 그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갈등은 인간관계라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갈등을 건강하게 풀 수 있는 방법과 노력들이 더해진다면 ‘고부갈등’이 영영 해결하지 못할 주제는 아닐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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