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애프런 에세이집
한국에 ‘밀라논나 할머니’가 있다면 일본에는 ‘사노 요코 할머니’, 뉴욕에는 ‘노라 에프런 할머니’가 있다. (사노 요코 할머니는 이미 작고하셨지만)
이들처럼 멋진 할머니로 늙고 싶은 게 내 목표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괜찮은 모습으로 나이 먹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는 아직 덜 여물고 미완의 한 인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돌이켜보니 결혼과 육아로 6-7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지나갔다’기보다는 ‘사라졌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6-7년의 시간들이 그냥 뭉뚱그려 사라졌다. 이러다 십 년 단위로 눈 깜짝할 새에 나이를 먹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대로 나이 먹다간 순식간에 할머니가 되어있는 게 아닐까! ‘기왕 늙는다면 멋진 할머니가 되어야지’란 마음으로 할머니들이 쓴 에세이집을 찾기 시작했다.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야밤에 자신의 예전 허튼짓이 생각나 이불 킥을 하며 그 기억을 괴로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정작 다른 사람들은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할 나만의 실수를 ‘나 혼자’ 곱씹어 괴로워했던 시간들 말이다. 하지만 멋진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실패하는 경험’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수 코스인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라 에프런의 에세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도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여서 ‘겉보기에는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가 무슨 실패작들이 있다는 거지?’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노라 에프런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노라 에프런은 하마터면 이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할 뻔했음을 고백한다. 만약 그녀의 삼촌이 막대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면!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다.
‘2층으로 올라가 한창 쓰고 있던 시나리오를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이걸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돈 때문에 작업했고, 솔직히 인정하자면 영화화될 것 같지도 않던 시나리오다. 덧붙이자면, 시나리오 쓰는 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컴퓨터를 껐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할 삼촌의 돈을 또 어디에 쓰면 좋을지 이것저것 떠올렸다.’ (p.84-85)
‘할 삼촌의 재산은 50만 달러가 안 되는 걸로 밝혀졌다. 어윈 덕분에 할 삼촌은 푸에르토리코 모험에서 대부분의 돈을 날렸다. 8분의 1로 나눈 그 돈으로 뗏장을 살 순 있겠다. 하지만 쓰고 있던 시나리오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만큼의 돈은 아니었다.’ (p.87)
그녀의 삼촌이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유산을 남겨 주었기에 그녀는 그만둘 뻔한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고, 완성한 각본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마터면 우리는 영화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를 보지 못할 뻔했다. 이 얼마나 아찔한 경험인가!
나이 듦에 따라 건망증이 심해지는 현상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다. 누군가는 건망증이 심해질 때 좌절하고 신세 한탄하고 말겠지만, 노라는 단지 좌절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재밌는 글을 썼다.
‘어느 날 나는 알츠하이머에 관한 책을 사려고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을 잊어서 못 사고 말았다.’ (p.10)
이 문장은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 더 재밌는 문장들이 다음에 나온다.
‘몇 년 전에 배우 라이언 오닐은 자신의 딸인 배우 테이텀 오닐을 못 알아본 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장례식장에서 딸을 못 알아보고 그냥 쓱 지나쳤다는 것이다. 모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그를 꾸짖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보다 한 달 전 라스베이거스의 어느 백화점에서 나는 무척 호감 가게 생긴 여자가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두 팔을 뻗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 여자 도대체 누구지? 어디서 봤더라? 그녀가 뭐라 말을 했고, 그제야 나는 그녀가 내 동생 에이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에이, 동생이 라스베이거스에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어. 미안하다. 사실 그날 내가 그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바로 내 동생이었다.‘ (p.12)
중독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다. ‘스크래블 블리츠’라는 영어 단어 게임에 중독되어 게임을 하다가 수근관증후군(손바닥과 손가락 등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까지 발병했다는 구절은, 사노 요코의 ‘1년 동안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턱이 틀어졌다’는 고백을 연상시켰다. 정말 웃기고 유쾌한 할머니들이다!
‘실패작’들이 단순히 작품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가슴 아픈 ‘이혼’의 경험도 실패의 한 경험으로 회고했는데, 유머러스하고 담담한 어투로 써 내려갔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자신의 치부조차 글로 쓸 수 있는 천상 작가다)
‘남편이 배신했다는 것을 일단 알게 되면, 아내는 또 다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파헤치게 된다. 결국 스스로 완전히 무너져서, 집에서 나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p.193)
‘내 생각에, 젊은 사람들이 신의를 지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생각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내 생각에, 사람들은 부주의하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아이들 문제는 제외하고.)
그리고 나는 살아남았다. 나의 신념은 ‘털고 일어나자.’다. 나는 내 경험을 쾌활한 이야기에 녹여내어 소설을 썼다. 그 소설로 번 돈으로 집도 샀다.
하지만 그 사람을 용서할 순 없다. 은유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는 나를 거의 죽일 뻔했기 때문이다.’ (p.193-194)
‘아이러니하게도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건, 그녀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던 두 번째 남편 칼 번스타인 덕분이기도 하다.’라는 옮긴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이러한 책들을 읽다 보면 여러 유쾌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에도 불구하고, 나이 드는 것의 쓸쓸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노라 에프런이 아무리 위트 있게 풀어냈다고 해도 나이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나이 듦이란 지난날의 영광과 명예로움은 중요치 않은 사소한 것들이 되고, 죽음을 앞둔 초라한 노인이 되어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럼에도 잊고 싶은 자신의 치부와 흑역사와 같은 지난 일들을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노라의 용기와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을 읽은 교훈은 하나다. 가끔 내가 쓰는 글들이 맘에 안 들 때면 글 쓰는 행위가 마치 배설하는 행위처럼 느껴지는데, 가끔 이렇게 배설물 같은 글들을 써서 세상에 내놓아도 되는지 죄책감이 든다. 노라 애프런도 위트 있는 글들을 마구 쓰기까지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고백하는데, 나도 그 과정에 있다고 상상해 보면 크나큰 위안이 된다. 노라처럼 수많은 실패를 재밌는 에피소드로 재생시킬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그전에 많은 실패 에피소드를 만들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