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나다 Sep 08. 2023

앞으로 명절 때 시댁에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모두가 평화로운 명절문화, 나부터 바꿔나가자.


제목 그대로 앞으로 명절 때 시댁에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정확하게는 앞으로 시어머니 얼굴을 안 보고 산다는 거였지만..



그동안 무례하고 선을 넘는 시어머니의 언행에 애써 '내가 잘하면 언젠가 이뻐해 주시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신혼시절의 며느라기까진 아니더라도 내 나름대로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나에게 선을 넘는 행동을 하고, 상처 주는 말들 때문에 비록 돌직구로 받아칠지언정,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에 이상반응이 생기기 시작했다. 턱 쪽에 임파선이 부어서 커다란 혹이 생겨 검사했더니 면역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심해서라고 했다. 그 외에도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주기적인 두통에 시달렸다. 병원에서는 호르몬 문제라고 했다. 그저 편두통 약을 먹으라고 했다.



 이러한 이상반응들이 무조건 시어머니 때문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스트레스의 원인이 어느 정도는 시어머니로부터 기인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연락을 이어오고 왕래를 끊지 않았다. 내가 왕래를 끊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1. 나뿐만 아니라 친정엄마에게도 주기적으로 전화해서 기분 나쁜 말들과 (예를 들면 며느리 비교, 며느리 욕, 다른 며느리 칭찬, 내 남동생 직업 비하발언 등) 선 넘는 행동으로 갑질 아닌 갑질을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눈에서 불똥이 튀었고, 정신 차렸을 땐 시어머니에게 미친 듯이 따지고 있는 날 발견했다.



 아무리 애증의 관계인 친정엄마라지만 나한테 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 엄마까지 괴롭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사돈(시어머니)이 주기적으로 전화하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받으면 기분 나쁜 말들을 하는 걸 일방적으로 듣고 있었을 친정엄마를 생각하니, 별로 잘나지도 않은 남편과 결혼했단 이유로 왜 친정엄마가 이런 갑질을 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내가 남편과 또 싸울까 봐 그동안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 즉시 시어머니에게 전화해 친정엄마께 사과하시라고 요구했다. 앞으로 친정엄마께 연락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도 얘기했다. 친정엄마 휴대폰을 가져가 시어머니 번호를 차단했고 두 분이 대화 나누던 카톡 대화창도 나와버렸다.




2. 시어머니가 한 번씩 대형사고를 칠 때마다 시어머니를 감싸는 남편의 반응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무례하고 선 넘는 행동들에 대해 남편한테 따지면, 남편의 지금까지의 반응은 이러했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우리 엄마 그렇게 나쁜 사람 아냐."(신혼 초)

"네가 확대해석 한 거 아냐?"

"네가 예민한 거 아냐?"

"자격지심 있어? 왜 그렇게 받아들여?"

"좋은 의도로 말했겠지."



시어머니는 내가 연년생 산후조리할 때 2번 다 사고를 쳐서 조리원에 있는 내내 펑펑 울게 만들었는데, (울면서 수유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이때조차 남편은 자기 엄마를 감쌌다. 한 번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 엄마의 무례한 행동을 자기 선에서 커트시키고, 내 편이 돼준 적 없다.



 평소엔 싸울 일이 없는데 시어머니만 끼면 어김없이 싸운다. 나는 이러한 남편의 대처에 크게 실망했고 그럴 때마다 정이 떨어졌다.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이면 언젠가는 남편과 이혼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시어머니와의 왕래를 끊기로 했다.



 이쯤에서 중간역할 못 하고 자기 엄마한테 휘둘려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자기 아내를 지속적인 상처를 받을만한 환경에 노출시키는 남편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이 갈 것 같아 사소한 대변을 해보고자 한다.



 남편은 시어머니 문제만 아니면 딱히 나무랄 데 없다. 나의 자기 계발 및 적성을 찾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준다. 다양한 취미활동 (글쓰기, 그림, 산책, 운동, 외국어공부, 독서 등등)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준다. 자비로 에세이집이 나왔을 때 나보다 남편이 더 좋아했다.



 주말에 듣고 싶은 세미나와 강연, 락 페스티벌 등등 마음껏 다녀오라 하고 본인이 딸 둘을 봐준다. 주말이면 요리를 본인이 한 끼는 차려내려 노력하고, 주말 동안 빨래와 건조기 돌리기, 식세기 돌리기, 재활용품 버리기 등 가사 분담에도 적극적이다. 육아의 노고를 토로하면 잘 공감해 주고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려 노력한다. 힘들면 반찬은 사 먹으라 하고 가끔 갈비탕 등을 시켜서 요리의 간소화를 적극 지지해 준다.



 무엇보다 친정 부모님께 나보다 잘한다.  결혼 후 신혼 땐 친정과 20~30분 거리였는데 어쩌다 주말마다 같이 외식해도 싫은 내색 한 적 없다. 주말부부가 되기 전엔 친정 부모님 모시고 1박 2일로 장거리 여행도 자주 갔다. 운전과 짐 나르는 걸 도맡아가며.. 계획형답게 여행코스며 맛집검색 또한 남편이 했다.



 친정엄마가 산악회에서 등산 가는 날이면 아버님 혼자 계신 거 아니냐며 우리가 같이 가서 점심 먹고 오자고, 나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결혼 전엔 여행동아리 활동이 활발했고, 친구들도 많아서 결혼 후에 친구들 자주 만나는 거 아닌가 내심 살짝 걱정했는데 지금 남편은 지독한 집돌이가 되어 일 년에 한 번 친구들을 만날까 말까다. 다들 자기 가정 생겨서 서로 시간 맞추기 쉽지 않다나.. 끼리끼리란 말처럼 친구들 또한 엄청 가정적이라 자기 가정을 우선시했다.



 오히려 결혼 전에 지독한 집순이였던 내가 남편보다 더 자주 친구들을 만난다. 그래봤자 한 달에 한 번 정도지만. 주중에 혼자 애들 보느라 스트레스가 쌓여서인지 주말만 되면 자꾸 탈출하고 싶어 진다. 서울에 친구 만나러 간다 하면 자기가 애들 봐줄 테니 스트레스 풀고 오라며 흔쾌히 보내준다.



 그렇다고 술,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게임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금요일밤에 야구중계를 보며 치킨을 시켜 먹거나 비빔면을 끓여 먹는 것 등이 유일한 남편의 낙이라면 낙이다. 남편의 쉴드는 이쯤이면 충분할 것 같다.



  문제는 시어머니 문제로 싸우면 (일방적으로 내가 화내고 따지는 식이지만) 평소에 잘했던 남편의 모든 행동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운함과 분노만 자리 잡는다는 거다. 




3. 시어머니의 무례하고 상식밖의 행동을 남편에게 얘기하면, 시어머니를 감싸는 것도 모자라, 이런 나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툭하면 "그럼 연 끊어. 연 끊고 살아."라고 한다는 것이다.



 내 감정과 상처를 알아주는 걸 바라진 않더라도, 저런 말을 듣는 순간..



 아무리 상처받고 감정적으로 힘들었어도, 그저 남편의 엄마란 이유로 도리를 다하고자 나의 감정은 묻어두고 아등바등 잘 지내보고자 고군분투했던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허탈해졌다. 그냥 그렇게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구나. 난 그동안 뭘 위해 이렇게 혼자 노력해 왔지?



 앞으로 내 감정과 내 기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트집 잡고, 못마땅해하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 잔소리하고, 친정엄마에게 내 흉을 보고, 나뿐만 아니라 친정엄마에게까지 갑질하는 시어머니를 내 선에서 끊어내기로 했다. 더 이상 지속적으로 상처받을 만한 환경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 날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해도 날 미워하고 못마땅해하는 시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더 이상 갈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날 싫어한다면 굳이 찾아가서 구박을 받느니, 앞으로 내 얼굴을 안 보여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시어머니 때문에 평화로운 일상이 주기적으로 파괴됐다. 시어머니는 주기적으로 잔잔한 호수에 심심풀이용으로 돌을 던져 쓸데없는 파동을 만들었다.



 시어머니가 이럴 때마다, 시어머니가 너무 지긋지긋해서 평생 시어머니와 남처럼 살고 싶어서 남편과 이혼하고 싶었던 적도 있다. 이혼하면 이 지긋지긋한 사슬이 끊기지 않을까. 너무 지겨워서 아예 접점을 안 만들고 남처럼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자간의 연까지 끊게 할 생각은 없다. 내가 뭐라고 혈육까지 끊으려 들겠는가. 남편에게 앞으로 주기적으로 했던 간헐적인 안부전화는 본인이 직접 하라고 했다. 각종 경조사비도 알아서 보내라고 했다. 명절 때 둘째 데리고 혼자 찾아뵈라고도 했다. (둘째는 남편 판박이다. 첫째는 날 닮았는데 혹시나 며느리 닮은 첫째를 구박할까 봐 노파심에 둘째만 데리고 가라고 했다. 실제로 시어머니는 차별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둘째를 더 예뻐한다.)



 마지막으로 시어머니가 했던 치명적인 말실수를 남편에게 담담하게 얘기하자 남편도 속으로 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둘째 데리고 혼자 찾아뵈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기도 당분간 안 가겠다고 한다.



  이번 추석엔 이리저리 놀러 다닐 생각이다. 서울 나들이나 가고 바닷가 놀러 가서 조개구이나 실컷 먹고 오고 숲길이나 놀러 가서 마음껏 힐링하고 올 예정이다.



 친정에도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식구가 가면 또 시장봐다 밥 차려야 하는데 4인 가족 끼니 차리기도 힘든 걸 알기에, 친정엄마한테 그냥 밖에서 맛난 음식 외식하자고 했다. 여자들의 일방적인 노동과 희생으로 이룬 '평화로운 명절 풍경'은 사절이다. 그 누구의 희생도 없이 모두가 즐거운 명절 문화를 나부터 앞장서서 바꿔나갈 생각이다. 



 모두, 평안한 명절이 되시길- 




(표지: Berthe Morisot, 'Girl With Dog) 










 




작가의 이전글 2023년 펜타포트 공연관람후기(minipin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