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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주면 호구로 보는 사람들

염치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by 손나다

내 주변에 왜 이렇게 염치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인가? 잘해주면 호구로 보고 더더 바라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인가? 상대가 한 배려가 어느 순간 권리가 되어서 당연시하며 요구하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 것인가?



방금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지인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연말파티 안 하냐며 '연말파티를 우리 집에서 하잔다.'



그동안 우리 집에 자기네 가족들이 두세 번 빈손으로 놀러 와서 대접받고 돌아갔을 때도, 자기 집엔 절대 초대 안 할 때에도, 그런가 보다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집에서 연말파티를 하자고' 당연히 요구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황당한 마음과 더불어 화가 불쑥 올라왔다. 진짜 이 사람은 나를 호구로 보는 것인가? 어떻게 이런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지?



그래서 "저희가 갈게요. 언니네 집에서 해요."라고 하니까 손사래를 친다.



자기 집은 오픈도 안 하면서 다른 사람 집은 친정집 드나들듯이 틈만 나면 놀러 오려고 하는 것은 무슨 경우일까. 애초에 자기 집을 초대하지 않을 심산이라면, 남의 집에도 자주 놀러 가면 안 되는 게 이치에 맞는 것 아닌가. 그냥 밖에서 만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런가 하면 아이 친구 엄마의 사례도 있었다. 남의 집 놀러 오면서 빈손으로 오는 엄마, 매번 얻어먹기만 하면서 지갑 놓고 왔다고 기어이 마지막까지 얻어먹는 엄마, 그러면서 자기 애는 학원 엄청 많이 보내는 엄마.



우리 집에 초대해서 남의 집 아이들까지 간식먹이고 저녁 먹이고 녹초가 됐는데, 어느 날 아이 친구 엄마한테서 자기 아이 내일 우리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내일 자기 야근해서 애 봐줄 사람이 없다고' 함. 난 이 말을 듣고 정말 머리가 띵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줄 알았다. 야근이 있으면 남편과 일정 조율해서 자기들끼리 해결해야 할 일 아닌가. 그걸 왜 아이 친구 엄마한테 부탁한단 말인가. 나보다 더 친하게 지내던 다른 아이 엄마에겐 이런 부탁도 안 하고 나한테만 했다고 했다. 얼마나 날 호구로 보면 이런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 특징이 있다. 남한테 얻어먹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면서, 남의 배려를 당연시하고 틈만 나면 벗겨먹으려 들면서, 자기 가족한테는 돈을 팍팍 쓴다는 거다.



일 년에 한두 번씩 해외여행 따박따박 가고, 자기 집 자식들 학원은 또 얼마나 많이 보내는지. 집밥 거의 안 먹고 외식할 때가 부지기수고. 그런데 나만 만났다 하면 얻어먹으려고, 아이 돌봄 받으려고 혈안이 된다. 심지어 나는 워킹맘도 아니고 전업맘이다.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그렇다. 잘하면 잘할수록 남의 집 며느리랑 비교하며 더 대접받으려 하고 쉴 새 없이 선을 넘는 언행을 했다. 마지막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듯한 말을 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말을 했을까 친정엄마랑 얘기하면, 친정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처음부터 너무 잘해줘서 그래."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지 생각해 봤다. 내가 했던 배려들이, 퍼주기 좋아했던 나의 성격이 이렇게 염치없이 받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은 건 아닌가. 많은 반성이 들었다.



언젠가 아이 친구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진짜 착하다. 언니처럼 착한 사람 처음 봐."



난 이 칭찬이 굉장히 묘하게 들렸다. 이 말을 한 뒤 그녀는 나를 마치 호구처럼 부려먹으려 들었다. 분명한 사실은 '착하다'는 이제 전혀 칭찬이 아니며, 장점도 아닌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거다. 착하고 잘 베푸는 사람처럼 보이면 호구처럼 이용해 먹는 게 요즘의 실태다.



앞으로는 두 번 베풀어서 상대에게서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고, 고마워하는 기색도 없으며, 나의 배려를 권리처럼 당연시한다면, 곧바로 손절하겠다. 아니 애초에 그냥 무조건 더치페이해야겠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들여 관계를 만들어갈 가치조차 없다.



새해엔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리느라 아까운 내 에너지를 소모하고 감정 소모하지 않겠다. 정말 다시 한번 남들에게 잘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인간의 본성은 악해서 잘해주면 호구로 보고 더 착취하려 든다는 한 철학자의 말에 점점 더 공감하게 된다. 인류애가 바사삭되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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