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조용한 손절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글을 썼다는 걸 알고 있다. 상대가 선을 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더라도 나는 최소한 5번의 기회를 주는 편이었다. 아마도 '인간은 계기만 있다면 착하게 갱생할 수 있는 존재다'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도 아니면 '나는 그들을 바꿀 수 있다'라는 자만심이었거나.
지금에 와서 기존에 고수했던 나의 입장을 번복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선을 넘고 무례한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참아가며 내가 느꼈던 점들에 대해 요약해 보았다.
1. 처음에 그들은 가벼운 잽들을 날리지만, 상대가 허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더 큰 펀치를 날린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들은 상대가 배려한다고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시하고, 무시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이용해 먹으려 들 뿐이다. 점점 도가 지나친 행동들을 하며 마치 상대가 자길 어느 정도까지 받아줄지 시험이라도 하듯이 도발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2.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애초에 관계에 있어서 조율이란 자체가 그들에게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조율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였다면 애초에 상대가 손절을 생각하게 하는 행동들을 일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며 본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간혹 기적의 순간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죽음 직전에 가서 본인이 큰 깨달음을 얻고 각성하거나, 바뀌기 위해 의식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두 가지 경우가 별로 없으며 대개는 자신의 본성대로 계속 살아가게 마련이다.
3. 그들을 상대하느라 나의 에너지가 자주 소진된다.
그들을 상대하며 겪지 않아도 될 상처와 감정적 타격을 심하게 입는다. 그것도 그들을 만 때마다 자주 입는다. 그들을 대할 때마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와 감정적 소모가 커지게 되고 나의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때로는 그들이 했던 언행들을 곱씹으며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정말 나쁜 의도로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니겠지' 등등의 생각들을 하느라 소중한 내 시간을 허비한다.
4. 그들은 더더더 바란다. 그들의 요구는 끝이 없다.
상대가 충분히 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더 요구한다. 다른 사람에게 라면 하지 못할 부탁을 하기도 하는데, 만약 부탁을 거절하면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우기거나, 떼를 쓰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부탁은 말 그대로 부탁이며, 상대가 부탁한다고 해서 모든 걸 제치고 상대의 부탁을 들어줄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상대를 호구처럼 부려먹으려 든다. 상대가 당연히 자신의 요구와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상대의 배려가 권리가 되는 순간이다.
5.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인류애가 상실된다.
이들을 계속 겪다 보면 인간에 대한 혐오가 생기고, 인간 본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아무리 혼자 있기를 즐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이 점을 상기해 보면 인간관계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입장이 생기는 패턴을 강화시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을 애초에 진작부터 쳐내지 못하고 바보같이 상대가 바뀔 거라는 일말의 순진한 희망과 기대로 필요 이상의 기회를 주며 질질 끌려다닌다면,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인간관계에 대해 완전히 벽을 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겪으며 느꼈던 바에 따르면 인간 본성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분명 좋은 인간도 있다. 인간이라고 다 형편없는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형편없는 인간들에게 장기간 노출될 경우, '모든 인간은 형편없는 존재다',라는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장기적인 내 인간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려면 그들과 일찌감치 손절해야 한다.
적절한 손절은 여러모로 좋다. 일단 내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쓸데없는 곳에 허비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때 아낀 나의 에너지를 중요한 부분에 몰입할 수 있다. 더불어 그들로 인해 상처받음으로써 받게 되는 정신적 타격으로부터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한 사건사고나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간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하게 되는 위험성을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가 싹수가 보인다면 일찌감치 손절하라. 5번의 기회를 줄 것도 없다. 2번, 많아야 3번이면 족하다. 3번이면 인간의 면모는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초기에 아무리 철저하게 숨긴다고 해도, 상대가 호구처럼 퍼주고 잘해주면 서서히 그 가면을 벗게 되어 있다.
얻어먹기만 하는 걸 당연시하는 사람은 일찌감치 손절해라. 말도 안 되는 무례한 질문을 하거나 말을 끊는 게 습관인 사람, 약속시간에 습관적으로 늦으며 미안한 기색 없이 당당한 사람, 상대의 기분은 살피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막말을 내뱉는 사람, 상대가 어찌 되든 본인이 하고픈 행동은 꼭 해야 되는 사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 상대가 잘하면 잘할수록 더 큰 요구를 하는 사람, 남들에게 하지 못할 큰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죄책감을 유발하며 끈질기게 요구하는 사람 등등..
손절해야 할 사람은 많다. 어쩌면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손절하면 친구가 남아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만 남아있다면 전부 다 손절하고 차라리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 이런 사람들이 100명 친구로 있는 것보다 혼자 평화를 찾고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그러므로 나는 기존의 나의 입장을 번복하고, 할 수만 있다면 초기에 바로 손절하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