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는 흔치 않지만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종이책이나 이북이냐의 여부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패드로 이북을 보는 게 흔하다. 어쩌다 지하철에 타면 모든 사람들이 죄다 핸드폰이나 패드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들은 누가 타고 누가 내리는지 알 수 없고, 내 앞에 노약자나 임산부가 서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화면 속 장면들만 고개를 처박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책을 꺼내는 건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책을 읽는다고 유난을 떨고 싶지도 않고,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다. 금지된 책이나 19금 책을 읽는 것도 아닌데, 책의 제목이 알려지는 것도 어쩐지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물론 종이책과 이북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나 또한 한동안 밀리의 서재를 결제하여 이용한 적이 있었다. 집에 쌓여가는 책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쌓여가는 책들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책을 안 읽을 수도 없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달에 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규칙적으로 지불하면, 수천 권의 책들을 무한정 볼 수 있다는 이북 서비스에 현혹됐다.
그래서 지체 없이 정기결제를 하여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매달 이용료만 기부하듯 나갔다. 마치 넷플릭스에 들어가 메인 화면만 보며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다가 다시 나가는 것처럼, 밀리의 서재에서도 이런저런 책들을 둘러보며 고르기만 할 뿐,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너무 많은 옵션이 날 미치게 만들었고 단 한 권의 책도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쩌다 한 권을 정해 읽기 시작해도, 다른 놓치고 있는 수많은 책들의 존재가 날 조급하게 만들었다. 중반까지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 읽고 있는 와중에 카톡 알람이 뜨면 확인하느라 잠시 나갔다가 이북의 존재를 잊고 딴짓을 하기 일쑤였다. 이북을 읽는다는 행위는 마치 놀거리가 많은 수많은 자극이 가득한 놀이동산에서 혼자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수험생이 된 것과 같았다. 글자를 읽기 위해 수많은 저항과 유혹을 물리쳐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승리한 적 없다. 나의 얄팍한 집중력은 점점 더 바닥났고, 이북을 읽기 위해 모든 저항을 물리쳐야 하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피곤하게 느껴졌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종이책을 읽기 위해 더 이상 책들을 늘릴 순 없었다. 이미 집에 있는 책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았다. 한동안 알라딘에 안 읽는 책들이나 다 읽은 책들을 중고로 팔아보았지만, 문제는 책을 팔아서 포인트가 들어오면 그 포인트로 또다시 책을 산다는 것이었다. 정말 나란 인간은 답이 없었다. 책 팔아서 들어오는 포인트가 공짜처럼 느껴져서 더 책을 마구 샀다.
그렇다고 종이책이 주는 이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종이책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새책 냄새가 좋았다. 무한정 내려야 하는 스크롤이 아니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행위가 안정감을 주었다. 한 권을 다 읽었을 때의 성취감은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한 사람당 10권씩 빌릴 수 있었고 2주간의 대출기간이 있었기에, 나는 마치 마감에 쫓기고 있는 만화가처럼 강박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소유하지 않으니 무겁게 쌓이지도 않았다.
마침 집 근처에 차로 10분 거리에 찾으면 웬만한 책들은 다 나오는 수만 권의 책들을 보유한 도서관도 있어서 참새 방앗간처럼 자주 방문했다. 어쩌다 이 도서관에 없는 책들은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들로 상호대차를 통해 빌려 읽었다. 어찌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지 도서관을 이용하며 불편한 점이라곤, 빌릴 때의 가볍고 신나는 발걸음과는 다르게 반납하러 갈 때의 약간의 귀찮음 뿐이었다.
지금은 집에 있는 책부터 다 읽고 처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 권씩 읽기 시작한 터라 잠시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은 보류하고 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는 것은 여러모로 이점이 많기에 추천하고 싶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들이 집에 쌓이는 게 싫은 사람에게 책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유혹의 알람이 와도 샛길로 새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분들이라면 이북만큼 가성비가 좋은 것이 없다. 어떤 분은 오디오북으로 한 달에 서른 권 넘는 책들을 완독 한다고 하였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각자의 방법으로 책을 즐기면 된다. 무엇보다도 온갖 흥미로운 즐길거리로 우리의 집중력을 실시간 빼앗아가는 지금 시대에 책을 어떤 방식으로든 읽는 것 자체가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 되었다.
10분 이상 책을 읽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멀티태스킹을 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금붕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인간보다 길다고 한다. 금붕어의 집중 시간은 약 9초다. 과도한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의 증가로 인간 성인의 집중력은 8초 정도라고 한다. 이것도 예전에 조사한 내용이니, 지금은 아마 더 짧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예전보다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긴 호흡의 글들을 예전엔 쉽게 썼었는데 이젠 엄두가 안 날 때가 많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시간을 정해 그 시간만큼은 핸드폰을 넣어두고 온전히 독서와 글쓰기에만 집중하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들로 정신이 혼란해질 때가 많다. 돌이켜보면 어느 것 하나 남아있지 않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보들을 쫓아가지만, 결국 모든 걸 놓친다.
우리에겐 약간의 공백이 필요하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기 위해 독서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방해받지 않고 독서할 시간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대세의 물살을 거스르는 저항이 심한 것일지라도. 당장은 아무 소용없어 보이는 고리타분한 유물처럼 느껴질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