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안부전화, 필수인가요?
안부 전화하지 않는 며느리
며칠 전 지인이 고민상담을 해왔다. 결혼한 지 3년 차인 나름 새댁이었던 그녀는 나에게 '시댁에 안부전화를 하는 횟수가 고민이라고 어떻게 조율하느냐고' 물었다.
안부전화를 주기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답하자,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말하면 또 불효 막심한 며느리라고 악플이 달릴까 봐 미리 밝혀두는데,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아니 그런데 애초에 주기적으로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욕먹는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하고 육아하느라 바쁜 현대사회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정한 패턴으로 시댁에 안부전화를 해야 하는 며느리의 고초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상해 하지 않는다. )
나에게도 매일매일 안부 전화하여 1시간씩 시어머니와 통화하던 며느라기 시절이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했다. 맞벌이하던 시절이었는데, 퇴근하고 저녁때 통화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고 녹초가 된 상황에서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시댁에 안부 전화하기' 미션을 매일 했던 거다.
우연히 신혼집에 놀러 온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걸 목격하고는 깜짝 놀라실 정도였다. 자기와는 짧게 용건만 간단히 하는 무뚝뚝하고 애교 없는 딸이 시어머니에게는 없는 애교 부려가며 살갑게 '수다 떠는' 모습을 보노라니 딸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상하게 신혼 때 이유 없이 주기적으로 아팠는데, 아마 스트레스가 아니었나 싶다. 본연의 모습을 억누르고 가식적인 모습만 연출했으니 아플만했다. 보는 사람마다 '결혼하고 나서 왜 그리 살이 빠졌냐'며 놀라워했다. 특별히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닌데 얼굴이 반쪽이 되고 아파 보였나 보다. 반면 남편은 지인들로부터 결혼 후 '살이 많이 쪄서 보기 좋다'란 말을 많이 들었다. (이 부분이 조금 괘씸하다!)
안부전화뿐만이 아니라, 정성껏 요리한 밑반찬을 세팅한 저녁 밥상을 사진 찍어 카톡으로 시어머니에게 보내기도 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신혼 때에는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은 욕구가 컸다. 비록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산후조리하면서 시어머니와 크게 싸운 이후로 서로의 밑바닥을 보게 되었고, 더 이상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겪고 덤덤하고 무던하게 서로 '선'을 잘 지키는 사이좋은 사이가 됐다.
사실 30년 이상 나를 키워준 부모님이 따로 있기에, 결혼한 후 갑자기 가족으로 묶인 시부모님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어색하고 불편하고 긴장되는 게 당연하다. 가족이 되기 위한 과정은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기도 한다.
날씨 얘기, 건강 얘기도 한두 번이지 매번 물을 수도 없다. 서로의 근황을 자세히 낱낱이 밝히기에는 그 정도로 친하진 않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자신의 근황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가 약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왕왕 있기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안부전화가 달갑지 않은 이유는 안부전화가 마치 해야 할 과제나 숙제 검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작위적인 안부전화는 서로를 괴롭힐 뿐이다. 며느리는 괴로울지라도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며느리에게 안부전화라는 형태로 주기적으로 챙김 받는 행위'에 대해 만족할 수도 있다.
무뚝뚝하고 단답형을 일삼는 아들보다는 살갑고 애교 많은 며느리를 통해 겸사겸사 아들의 근황도 자연스럽게 알아내고 아들 내외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이러한 궁금증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강요의 형태가 된다면 문제가 된다. 주로 '일주일에 두세 번은 며느리가 안부전화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시부모님이 있다. 안부전화는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진정한 안부전화 아닐까. 왜 아들 대신 며느리의 안부전화를 받고 싶은 걸까. 며느리가 재잘재잘 근황에 대해 얘기해주길 바라는 것일까.
'요즘 세상이 어떤데 며느리에게 안부전화를 강요하는 시부모님이 진짜 있어요?'
'요즘엔 시어머니도 며느리 눈치 봐요.'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시댁에 안부 전화하는 문제로 스트레스받는 수많은 며느리들이 존재한다. 내 생각엔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더'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며느리가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아랫사람 부리듯 일을 시키지 않고, 친정부모님이 사위 대하듯 존중해 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AI니, 메타버스니,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까지도 시댁의 안부전화 때문에 골치 아픈 며느리가 많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씁쓸하다. 더불어 우리네 남편들은 친정부모님에게 주기적으로 안부전화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왜 며느리들만 안부전화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려야 할까.
이제는 불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행동하자. 무리한 일을 요구한다면 하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자. 받아들일지 말지는 상대의 몫이다.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나의 의견에 불만을 표시하고, 때로는 화를 낼 지라도 나의 입장을 고수하자. 자기 본연의 모습을 깎아가며, 나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감수해가며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언제까지 수행할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은 정도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안부전화를 꼬박꼬박 하지 않아도 시어머니의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며(?) 아이들까지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한다.
결혼 7년 차인 지금은, 특별히 용건이 있지 않는 이상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다. 대신 가끔 아이들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고, 틈날 때마다 아이들 화상통화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갈등의 소지가 있으신 분들은 각자의 집(친정, 시댁)에 아이들 사진을 전달하는 것을 추천한다.)
근황이 궁금하면 요즘엔 시어머니가 먼저 전화를 하신다. 특이한 점은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인 나에게 하신다는 거다. 치열한 다툼을 겪으며 관계 조율을 끊임없이 해왔고 이제는 진정한 가족이 된 듯한 기분이다. 강제성을 띄지 않으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어쩌다 하는 통화가 불편하지 않다. 친정엄마와의 통화처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고 대화 사이 잠시 동안의 침묵에도 허둥지둥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이 퍽 마음에 든다.
부디 안부전화로 스트레스받는 며느리들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안받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