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제주도 여행 다녀왔습니다.
온전히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시어머니가 안쓰럽다.
시어머니와 산후조리 때 엄청나게 싸운 이후로 지금은 평화 유지기간이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시어머니와 여행을 떠날 줄은! 정확히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이러하다.
어쩌다 명절 때 얼굴 볼 때마다 같이 제주도 여행 가자고, 제주도 사는 아주버님네와 함께 만나자고, 귀가 따갑도록 말씀하셨다. 항상 그냥 한 귀로 흘리고 만 남편과 나는, 그 얘기가 결혼 7년 차까지 계속되자 갑자기 '끈질기게 함께 여행 가기를 희망하는' 시어머니가 측은해 보였다.
이쯤 해서 드는 의문 하나. 왜 어른들은 그토록 자식 내외랑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걸까? 모두가 불편한 여행일 텐데. 모든 부모들이 결혼한 자식 내외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내가 딸들을 시집보내면 그렇게 될까. 그때 돼 봐야 알겠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마침 남편 휴직 2년 차에 들어서고 있던 터라 이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며 빠르게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막상 제주도 여행이 확정되자 시어머니는 얼떨떨한 눈치였다. 남편은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과 렌터카를 예약하고, 여행 일정을 짰다. 나 또한 월요일 강의를 마치자마자 복귀하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은 뒤 정신없이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분주했다.
무려 4박 5일의 강행군이었다. 아직은 예측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와의 여행이 좋을지 나쁠지는.
머물게 된 호텔은 형님 찬스로 직원가 할인이 적용된 풀옵션 호텔이었는데 취사가 가능하고 건조 기능이 겸비된 세탁기도 있었다. 그냥 아파트와 흡사한 구조였다.
풀옵션 이어서일까? 시어머니가 밤낮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시네... 취사 기능이 가능한 게 함정이었다. 급기야 마트에서 작은 쌀 포대를 사다가 아침저녁으로 새 밥을 지으신다. 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회 세 접시를 사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씻고 나온 남편이 '나는 회 못 먹는데. 내가 먹을 건? 정말 너무하네.' 투덜거리며 혼자 고기를 굽는다.
여행의 묘미는 삼시세끼 맛난 음식 사 먹으며 좋은 풍경 구경하고 안 가본 곳 체험하는 재미 아니던가. 엄마의 집밥이 그리웠던 건지 남편 또한 시어머니를 말리기는커녕 사 먹어봐야 비싸기만 하고 먹을 것도 없다며 시어머니를 부추긴다.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순간을 그냥 즐기는 게 아니라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라고 말하시며 이건 얼마인지 저건 얼마나 드는지를 신경 쓰신다. 1박에 20만 원이었는데 하루 숙박을 취소하고 형님네서 자자고 말해서 남편이 화를 내기도 했다. 사실 형님네에서 4박 5일 내내 숙박하려는 어머니를 말리기 위해 일부러 우리와 함께 숙박하도록 다인실 호텔을 잡았는데, 여행 내내 호텔비가 비싸다며 투덜거리셨다.
힘들여서 운전해 제주시에서 서귀포시의 한 여행지에 딱 도착하자마자 '사실 자기는 여기 와 봤던 곳이라 별 감흥이 없다. 안 가도 된다.'라고 말해 남편을 분노케 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제주도 여행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거라 생각한다.)
빵을 좋아하는 우리는 제주도에 있는 유명한 빵집이나 카페를 돌아다닐 생각에 내심 기대했는데, 식사시간 전 후로 한 번인가 두 번 빵집을 가자마자 '몸에도 안 좋은 빵 좀 그만 먹으라'며 타박하는 어머님 눈치를 보느라 빵을 먹고 다시 한식집에 가야 했다. 이렇게 계속 한식만 사 먹는 여행은 또 처음이었다. 함께 여행 가자고 노래를 부르셔서 떠난 여행인데 '사실 여행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집에 있는 게 제일 좋다'라고 말하시면서도 자식들과의 여행이 마냥 싫지는 않았는지 '앞으로 명절 때마다 큰집 제사 가지 말고 여행이나 다니자'며 모순된 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어머니의 투덜거림에 남편은 틈틈이 분노하는 듯했다. 아 어른들과의 여행이 이래서 힘든 거였구나! 나는 왜 항상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것일까.
그 밖에도 차 안에서 내 음악을 틀을 수 없어 괴로웠다. 나름 절충안으로 아이들 동요를 계속 틀었는데, 드라이브하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나도 들을 수 없었던 건 괴로웠다. 그렇다고 이어폰으로 들을 수도 없었다. 4박 5일 내내 동요만 틀었는데, 어머니도 동요가 지겨웠는지 어느 날 저녁, 숙소에서 거실이 다 울리도록 크게 트로트를 틀며 흥얼거리셔서 방문을 닫아버렸다. (소음에 민감한 편이다.)
함께 숙박해서인지 씻는 것도 불편했는데, 화장실이 2개임에도 우리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셨다. 편하게 사용하시라고 가장 큰 방을 내어 드리고 안에 딸려있는 화장실을 사용하시겠거니 했는데, 너무 무섭다며(?) 굳이 우리가 쓰는 거실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셨다.
그래도 배려해 주신 점도 많다. 아이들만 챙기라며 부엌일은 도맡아 하셨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며느리에게 설거지를 시키신 적이 없다. 원체 깔끔한 성격이라 남이 설거지하는 걸 못 미더워하기도 하지만, '아이들 챙기느라 힘든데 그냥 애들 밥이나 먹이라'며 식사 준비 및 뒷정리는 도맡아 하신다. 나는 그냥 숟가락이나 반찬을 놓는 정도다.
아이들 옷은 세탁해서 입혀도 금방 더러워져서 한 번 입으면 빨기 일쑤인데, 그래서인지 하루만 지나도 빨랫감이 많이 쌓였다.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나오면 어느샌가 세탁기를 돌리시고 자고 일어나 보면 빨랫감을 널어놓으셨다. 그냥 아이들만 챙길 수 있어서 너무 편했다.
숲길을 산책하며 아버님과 많은 얘기를 한 것도 좋았다. 아버님은 예전부터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어머니 성격을 다 받아주며 '좋은 게 좋은 거지' 태도를 일관하셨기에 '성인군자'란 별명이 있었다. 어머니 성격을 다 받아주는 게 신기하다며 아주버님 또한 허를 내두를 정도였다. 부부는 정말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나 보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한 본능인 걸까, 아님 반대 타입에게 끌리는 본능을 따라간 걸까. 아버님은 평소 나무나 식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다양한 형태의 나무에 관심을 보이자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어머니와는 너무 많이 대화하면 필연적으로 미묘하게 기분 나쁜 소리를 듣게 되는데, 아버님과의 대화는 서로를 배려하는 기분 좋은 대화였다.
여하튼 순식간에 4박 5일의 일정이 끝나고, 공항에서 먼저 시부모님을 보내 드린 뒤, 남편과 나는 녹초가 되었다. 남편은 일정 짜고 여행 내내 운전하느라 바빴고, 나는 아이들 챙기면서 시부모님도 챙겨야 해서 정신없었다. 생각보다 어른들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는 건 극한 체험이었지만 계속 미루고만 있었던, 끝내지 못한 숙제를 해치운 기분이었다.
결론은 시부모님과의 제주도 여행은 나름 성공리에 막을 내렸지만, 당분간 함께 여행 가는 일은 보류하고 싶다. 부모님은 해마다 나이가 들어가는데 오늘이 가장 여행 떠나기에 젊은 날이겠거니, 소원 풀어드렸다 생각하련다. 좋은 경험이었다. 친정 부모님과도 다녀와야겠다. 다녀와서 또 후회하는 글을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