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의 출근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다.
친구 같은 삼촌이 되는 게 꿈인 나는
조카들과의 영화 약속을 위해
시골 본가에 내려가니
훌쩍 자란 조카 놈 둘의 머리카락이 덥수룩하다.
둘 다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워낙에 싫어했지만
중학생이 되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이러나 싶어 아직도 머리 자르는 것이
싫으냐 물으니
엄마가 바빠 가지 못했다며 엄마에겐 비밀이란다.
울컥,
쏟아져 버린 나의 유년기
너무 일찍 자라 버린 우리 삼 남매는
내 자식은 결코 일찍 철들어
제 할 일을 포기하는 꼴을 만들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서울생활에 지쳐 귀농을 택한
누나네 가족은
성실이 답이며, 진실이 드러나는 일,
농사를 짓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부모의 땀방울을 보고 자라는 녀석들이
일찍 철들 수밖에,
이 시골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함께 먹으며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니
까만 밤이 되어 괜히 또 눈가가 젖었다.
이 맘 때면 지인들이나 넷상으로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복숭아를 사고 싶다며 연락이 오는데
마음 약한 나는 늘 그들의 말에 상처다.
그들은 알 수도 없을 그 치열함을 몰라줘서,
오늘도 새벽 세시에 비 오는 들에 나가
수확을 하는데
장애가 있는 자식에게,
그것도 쉬는 주말에
두 시간을 달려 내려온 자식에게
일을 시킬 리 없으니
조금이라도 자두고 잠과의 싸움에 승리하여
대수롭지 않은 농담으로 새벽을 시작하기 위해
나머지의 내 마음은 작년에 썼던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나의 부모는
복숭아 과수원만 20년이 넘었다.
그간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의 시간을
일에 매달리고 수만 박스의 복숭아를
생산하면서 정작 당신들은
예쁘고 복스러운 상품의 복숭아를
드셔는 보셨을까 생각해 본다.
몇 해 자랑하듯 지인들에게 복숭아를
팔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의 남다른 맛에
칭찬과 감사를 아끼지 않았었는데
가까운 친구 놈에게 한 박스 선물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치 마트 시식코너에서 먹는 것만도
못한 무감정과 당연함에 그 후로
아무에게도 우리 복숭아를 준 적이 없다.
억하심정이 드는 나도 싫었고
오래 복숭아 농사를 지으면서도
좋은 상품의 복숭아 한 알 드시는 것도
주저하는 나의 부모에게 죄스러워서.
벌레 먹은 복숭아가 더 맛있다는 말은
이 세상 부모가, 아끼는 누군가 있는
사람들이 만든 건 아닐까나
참말로 아린 게 많아
살아가기 아린 세상이다.
Leica Barnak iiia
Leica Elmar 5cm f3.5
Zeissikon IIA
Zeissikon Jena Sonnar 5cm f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