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의 냉장고 청소를 돕다
#1
나는 늘 엄마의 과로가 걱정이다. 70이 넘으셨지만 그 열정과 끈기는 나보다 한 10배는 더 많아서 지칠 줄 모르고 일을 하신다. 일이 있기도 하지만 자꾸 일을 만드신다. 일을 말리는 게 집에서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다. 이번에 집에 내려갔을 때도 역시 그러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주방에서 딸까 딸깍 뭔가를 준비하시거나 벌써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텃밭으로 나가셨거나 새벽운동을 하러 나가신다. 하루를 그렇게 엑셀을 확 밟고 너무 힘차게 나가시는 것 같은데도 지치지도 않으신 모양이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보내거나 대접하거나...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뭔가를 하신다. 그렇다고 많이 드시거나 많이 주무시지도 않는다. 그렇게 늘 과로 모드는 우리 엄마가 언제 또 일을 벌이실지 늘 걱정이 된다
#2
전날 외삼촌 내외를 저녁식사에 초대하셨다. 오랜만인 데다 엄마가 워낙 외삼촌을 아끼시는 터라 상당히 많은 시간 준비하고 공을 들이셨다. 워낙 요리에 베테랑이시고 손이 빠르셔서 웬만한 음식은 후다닥 30분이나 1시간 안에 거의 작품 수준으로 만드시는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 나물에 반찬에 청국장 찌개에 소고기까지 준비하는, 웬만한 한정식보다 더 정갈하고 정성 들인 밥상을 준비하시느라 오후 내내 땀을 흘리셨다. 나는 처음에 좀 들여다보고 도와주는 척하다가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피곤한지 조용히 옆방에 가서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나고 나니 마치 한바탕 마법이라도 일어난 듯이 온갖 화려하고 맛깔난 음식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엄마는 또 뭔가를 요리하고 계셨다. 아,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엄마 표정을 보니 이제는 좀 지쳐 보이는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안타까웠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일은 이미 일어났고 판은 커졌고 수습하기에는 늦었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잘 마무리하기를 바랄 뿐이다. 상이 차려지기까지 조용히 도와 드렸다.
#3
"어제저녁에 냉장고 청소까지 다 했을 텐데, 네가 뭐라고 할까 봐 참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가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예전 엄마 성격 같으면 날을 새서라도 마음먹은 일은 꼭 끝내고 주무셨을 것이다. "그래? 고마워, 어제 안 하고 참아줘서" 하고 칭찬을 해드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깔끔한 성격에 냉장고 청소 한다고 하루종일 낑낑 대며 고생할 엄마의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그럼,,, 우리 다 같이 하자. 냉장고 청소" 나의 이 기특한 말에 엄마의 반응은 너무 시큰둥했다. "안돼. 어차피 내가 다 해야 할 일이야. 방해만 돼" 나는 애교반 강제반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엄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야. 아니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돼. 얼마나 엄마가 고생하는지 가족이 다 알아야지. 냉장고는 가족이 다 사용하고 혜택을 보는 거니까." 일을 완벽하게, 빠르게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우리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야 한다. 서로 조금씩 한 발씩 양보하여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손을 걷어 부치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가 냉장고 청소하신대요. “ 함께 하자고 눈짓을 하자 아빠도 옆으로 오셨다. 우리는 이렇게 바로 한 팀이 되었다. 제일 앞에 음료수칸부터 제일 아래 야채칸까지 모든 음식물을 꺼내고 칸막이들을 깨끗이 씻고 냉장고 안을 닦았다. 엄마의 진두지휘하에 나는 엄마 바로 옆에서 물건들을 꺼내고 닦고 정리하였고, 아빠는 칸막이들을 설거지하고 말리고 닦았다. 워낙 깔끔하신 엄마가 평소에 냉장고를 깨끗하게 정리를 해 두는 편이었지만 평소에 요리나 살림의 규모가 작지 않아 저장해 둔 음식, 내용물이 다양하게 많았다. 혼자 하셨다면 정말 하루 종일 얼마나 힘드셨을지 눈에 선하다. 세 명이서 열심히 매달렸어도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처음으로 가족이 함께 한 냉장고 청소였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어려운 점은 거의 없었다. 엄마도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하시는 것 같았지만 곧 적응하고 잘 리드하셨다. 아빠도 무난하게 잘 따라 주셨다. 나는 중간에서 격려와 칭찬을 해드리면서 분위기를 띄우는데 노력했다. “와. 너무 멋진데?. 앞으로는 이렇게 냉장고 청소는 꼭 같이 하는 거로 하기.!!! ” 엄마도 좋으신지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모두 행복해 보였다. 아빠도 뿌듯하신지 “그래. 좋구나”라고 맞장구쳐 주셨다. 가족 누구나 함께 사용하고 혜택을 받고 있는 냉장고를 함께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늘 엄마의 일로만 생각했었다. 이제 조금 철든 딸이 조금 철든 생각을 하게 된다. ‘행복한 가정은 함께 냉장고 청소 하는 것부터!’라는 문구를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