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를 자축하며
#1
오래전, 세상이 모두 내 마음처럼 될 것 같았다. 한 100살은 너끈히 살 것 같았던 새파랗게 어린 시절, 수많은 별들만큼 많았던 내 꿈 중에 '작가'는 늘 1, 2순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일장처럼 갑자기 어려운 주제를 내놓아도 글과 문장이 바로바로 튀어나왔다. A4지 두세 장은 거뜬히 채우고도 남았다. 지금으로 치면 '여름날의 추억' 같은 축 늘어지고 진부한 주제를 내놓아도, 어느새 영롱하고 꼿꼿하게 피어나는 여름의 나팔꽃처럼 신선하고 말간 글을 써 내려갔다. 어떤 느낌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글로 표현할 수 있었고 막힘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2
제인에어로 시작되었던 나를 설레게 했던 수많은 문학책들, 그때는 책의 활자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정도로 완전히 몰입되어 책을 읽었다. 그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았다. 가끔 책의 글씨들이 정말로 꿈틀거리는 걸 본 것도 같았다. 그렇게 한참 책에 푹 빠져서 살다가, 언제부터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글쓰기와도 그만큼 멀어졌던 것 같다. 어휘력과 표현력도 점점 떨어져 갔다. 그래도 글 쓰는 감각이 남아 있어 노트 필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노트 필기라는 것이 선생님의 실시간 강의를 정리, 요약, 첨삭하는 것이라서 순간순간 순발력 있는 어휘력과 표현력이 관건이다. 한동안 글쓰기는 노트필기 수준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전공과 음악 사이에서 셀 수 없는 많은 날들을 고민하던 그사이, 작가의 꿈은 잊혀져 갔고 대신 뮤지션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나의 20대가 흘러갔다.
#3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는 어떤 책의 제목처럼 정말 어느 날 시가 그렇게 왔다. 뭔가 나의 내면에 꿈틀대는 그것이 있었고 그것을 한 마디씩 받아 적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유치해서 동시 이하의 수준이었지다. 그 끔찍한 유치함을 아이 돌보듯 인내하며 참아냈다. 조금씩 시 다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세상은 내가 새로 정의한 사물, 사람들로 가득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내 세상의 조물주가 된 듯한 벅찬 기쁨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거침없이 시를 쓰던 시절이었다. 한참 피시방이 유행했을 때 나는 피시방에서 게임이나 채팅대신 날을 새가며 시를 썼다. 함축적이고 도약하는 느낌이 나의 성향과 잘 맞았고 시 안에서 나를 숨길 수도, 적당히 드러낼 수도 있어서 좋았다. 신비스러운 베일에 쌓여 있는 여인처럼 아름다우면서 신성했다. 그러다가 그 시에 노래를 붙이게 되었다. 시를 쓰고 그 시를 읽고 흥얼거리다가 음을 붙이게 되었다. 그렇게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그런 작업을 즐기고 놀다 보니.... 어느새 싱어송 라이터가 되었다.
#4
그러다......'작가'가 되었다. 좀 쑥스럽지만 그렇게 불러보자. 뭐 어떤가? 오랫동안 나는 숨어 지냈다. 내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지만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가끔 시로 표현해 보았지만 이제는 함축보다는 조금은 더 풀어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살짝 명랑하면서도 품위 있는 수다를 떨어보고 싶다.. 사랑스럽고 우아한 친구와 커피 한 잔 하듯이 그렇게 써보리라. 예전처럼 내가 거침없이 질주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열린 결말이라고 해두자. 명심할 것은 과거의 영광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 팍팍 튀어나오지 않는 단어와 표현에 대해, 수시로 짜증 나거나 좌절할 수 있지만 좀 봐주자. 어쩌겠는가? 이제는 좀 여유 있게 느긋해도 된다. 내가 무슨 노벨문학상을 타려는 건 아니니까. 나는 나의 글을 쓰는 것이 좋고 그것이 유일한 목표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여기 브런치가 좋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