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에 대한 변명
제목은 먼저 쓰지 않고 그냥 시작하자. 제목을 생각하느라 한 시간이 다 간다. 오늘 하루에 대해 뭔가라도 써 볼까 하고 겨우 들어왔는데, 제목 때문에 벌써 지쳐 버렸다. 아직은 글을 쓴다는 부담감 때문에 쭈빗거리면서 문 앞에 오래 서있다. 들어가도 될까? 들어가면 괜히 힘들어지는 거 아니야? 하기 싫은 숙제나 밀린 집안일 하듯 어차피 해야 할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미뤄보려고 버틴다. 몇 시간째 집 주변을 뱅뱅 돌고 있다. 어차피 할 거라면 큰 소리로 문을 쾅 열고 들어가자. 더 미루다간 날 샌다. 또 잠 못 잔다.
글 쓸 준비도 오래 걸리지만, 요즘 책 읽는 준비도 상당히 걸린다. 책을 읽는다는 것아 세상의 속도, 리듬과 정반대인 것처럼 느껴진다. 굉장히 느리고 우아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옛날 귀족들의 에티켓 같다. 중세 정도까지는 돌아가 많은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기도하는 심정은 되어야 한다. 티브이는 기본이고 갈수록 빠르고 화려한 매체들,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하다. 내 눈과 귀는 이미 그 강렬함에 중독되어 저 고요하고 단정한 사원에 바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날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눈과 귀를 안정시키고 심호흡을 깊게 하고 계속 까닥거리던 손가락을 진정시켜야 한다. 항상 시속 150km로 과속하던 사람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30km로 서행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얌전히 다소곳하듯, 우리는 요동치던 질주본능을 완전히 가라앉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책을 들 수 있고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사실 그 준비시간이 0초가 될 수 있고 영원히 될 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내 미적거리며 준비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참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머리를 계속 극적거리며 반항하는 10대 아이들 같기도 하고, 평생 사랑한다고 표현 못하고 뱅뱅 돌리거나 미루기만 하던 우리 부모님 같기도 하다. 글이나 책 읽기나 사랑이나, 적당한 때를 기다리다가는 평생 준비만 하다가 끝날 수 있다. 내 마음이 원한다고 생각하면 바로 하면 된다. 바로바로 뛰어들면 된다. 물이 보이면 뛰어들어 수영을 하면 된다. 땅이 보이면 그냥 걸으면 된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면 된다. 원고지나 백지가 보이면 그리고 뭔가 쓰고 싶으면 바로 쓰면 된다. 읽고 싶은 주제의 책이 눈앞에 있다면 바로 읽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두려움이 많다. 좋아하는 것에도 싫어하는 것에도 두려움이 많다. 깊이 들여다보면 좋아하는 것에 더 두려움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두려움을 서로 부추기며 응원하며 만족하며 살아간다. 평생 준비만 하며 살지 않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에서 벌떡 일어나야 하지만, 두려움에 오래 길들여 있었던 터라 준비운동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준비는 필요하다. 단 시작을 위한 준비운동으로 가볍게만 하자.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온몸을 충전하는 시간으로 하자. 저 밑에 이토록 아름답고 투명한 푸른 바다가 보이는데 뛰어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민체조 할 시간 정도는 기다려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