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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디 Aug 07. 2023

마드리드, 순례자들의 뒷풀이




 “아빠, 산티아고가 언제였지?”

평화로운 가족 카톡방에 언니가 메시지를 남겼다.

“잉? 산티아고?”

우리 가족들은 참 서로 소식을 전하는데 둔했는데, 이번에도 파리에 거주 중인 막내딸은 아빠의 스페인 여행 소식을 출국 1주일 전에 알게 되었다.  아빠는 인도까지 순례 여행을 했다는 신라 시대 스님의 이름을 딴 여행사를 통해 히말라야와 킬리만자로 등으로 하이킹 여행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같은 여행사 상품으로 40일의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아빠의 순례길 사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을 걸어서 다니는 것이니 이번 여행을 마치면 아빠가 다시 유럽을 오는 날은 기약이 없을 것 같았고, 나도 언제 프랑스를 떠날 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무리해서라도 아빠를 만나고 싶었다. 처음엔 아빠의 여정에 합류해 며칠을 같이 걸어볼 계획이었지만 기차도 버스도 멈추지 않는 작은 마을들로 내가 찾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다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돌아오는 마드리드에서 아빠를 만나기로 했다.



아빠와 만나기로 한 한식당에는 등산복을 입고 있는 한국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대여섯의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아무래도 직장인은 엄두를 내기 힘든 40일이라는 긴 기간 때문인지 대부분이 우리 아빠 나이의 60-70대 장년층이었고, 내년이 환갑이라고 소개한 아저씨는 일행들에게 아직 환갑도 안 넘었던 거냐며 막둥이 취급을 받았다. 나는 아빠, 그리고 아빠와 함께 온 친구 아저씨와 같이 앉아 무쇠 불판 위의 삼겹살을 구웠다. 이쪽 저쪽 테이블에서 소주잔을 들고 인사를 오고, 나중에는 남은 테이블들이 합쳐져 큰 테이블 두개만 남았는데 오랜만에 한국의 회식 자리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40일을 내내 걸어 800KM를 왔으니 피곤하실 법도 한데, 아저씨들의 소주잔은 쉴틈없이 비워지고 다시 또 채워졌다.


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순례 여행자들의 핫이슈는 함께 길을 걸었던 두 아저씨가 산티아고 순례길 종단 미사에서 예복을 입은 신부님들로 나타난 것이었다. 아빠 말로는 규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서로의 직업을 몰랐다고 한다. 선후배라는 두 사람이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상당히 각별해보였는데 알고 봤더니 신부님들이었다며 산티아고 순례길에 기분 좋은 서프라이즈가 됐다고 했다. 아빠의 설명 후로도 두, 세 아저씨의 버전을 추가로 들었는데, 종교에 상관없이 두 분의 신부님이 순례 여행객들 모두에게 즐거운 선물이 된 건 분명해보였다.



식사가 끝나고는 순례길 여행에서 짐을 날라주는 운전 기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마드리드의 한인 청년들과 함께 시내 구경을 했다. 패키지 상품대로라면 이대로 오늘 일정은 끝인데, 두 청년이 이대로 마드리드도 못 보고 가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냐며 즉석에서 무료 시내 투어를 기획했다. 테이블을 돌며 일일이 어디를 돌아볼 지 설명해주는 다정한 설득에 바로 호텔에 가서 쉬려던 분들도 많이 합류하여, 나까지 포함해 열 대여섯명이 함께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내내 스페인의 시골 마을을 걸어 이동했던 순례자들은 마드리드의 지하철에서도 사진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20살 정도의 대학생이었다면 이 상황이 부끄러웠을 것 같은데, 마냥 신난 우리 엄마 아빠 또래의 어른들을 보면서 왠지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한 마드리드 청년은 사진을 찍는 아저씨가 더 좋은 앵글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고, 고맙다고 말하는 아저씨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 “Welcome”으로 대답했다.


스페인 광장에서부터 비보이 공연을 하는 팀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등 길거리에 다양한 무대들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특히 마드리드 왕궁과 알무데나 대성당 사이 아르메리아 광장에는 온 몸을 금빛으로 칠하거나 인형 옷을 입고서 함께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거리 예술가들이 눈에 띄었다. 왕궁 담벼락에 걸터 앉아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돈은 좀 벌리려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낯익은 두 사람이 곰인형 분장사 앞 상자에 동전을 넣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환히 웃으며 일행의 무리로 돌아오는 두 사람은 예순 다섯이 넘은 연년생 자매이다.  

두 분은 마드리드를 돌아다닐 때도 꼭 팔짱을 끼고 함께 걸었는데, 순례길을 걸을 때도 두 사람이 떨어지는 걸 못 봤다고 한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이유를 물어봤을 때도, 동생 할머니는 “그냥 언니가 가자고 해서 따라왔어요!”라며 명쾌한 대답을 해주셨다. 물론 자기가 왜 따라와서 이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농담에 진심이 느껴졌지만, 느린 속도로 길을 헤매면서도 같이 완주한 일은 두 분에게  무척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나도, 나의 두 언니도 같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자는 제안은… 평생 안 할 것 같지만, 그래도 두 할머니처럼 육십살, 칠십살이 넘어서도 어디든 같이 여행을 다니고 싶다. 오랫동안 소중한 관계를 잘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안심이 된다.


알무데나 대성당 (익스피디아)


생각보다 왁자지껄했던 마드리드의 저녁을 마친 다음 날 아침, 아빠를 호텔 로비 조식 부페에서 만났다. 어제는 관광을 하고 사진을 찍느라 바빠, 막상 아침을 먹으며 우리는 처음으로 단둘이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간략하게 안부의 이야기를 나눈 뒤, 인턴하고 있는 회사에 자리는 생길 거 같냐는 아빠의 질문에 나는 왈칵 눈물이 터져버렸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빠도 나도 내가 일을 시작한 회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이 회사에서 자리를 구하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니 나와 맞지 않는 직장 매니저 때문에 여기서 일을 구하기는 커녕 하루 하루 인턴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괴로웠고, 학교는 다 끝나가는데 취직을 하는 건 점점 어려워져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결국 이 회사에서 자리는 못 구할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아빠는 별 말 없이 취직하는 것보다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니 조급해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길지 않은 대화였는데, 아빠의 대답은 나의 마음을 파악하고 또 내 노력이나 가능성성을 믿어주어서 나온 말인 것 같아 고마웠다. 아마도 아빠가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부담을 덜어줄 걸 알기에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와중에 황급히 내 고민을 털어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침 식사를 가볍게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아빠는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조개 장식품을 선물로 주었다. 유래가 무어냐고 묻자 아빠는 그런 내용을 어디서 읽긴 읽었는데 까먹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면서 산티아고 조개의 유래를 찾아서 아빠가 준 조개 목걸이와 함께 가족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들이 왜 너는 걷지도 않고 조개를 받았냐고 해서, 순례자를 마중 나간 사람의 특권이라고 했다.


파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 게이트 앞에서 아빠의 짧은 메세지를 받았다.

“어제 그분들한테서 좋은 얘기 들었네. 길은 만들어지고 열리게 되어 있다고.”

조식을 먹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와중에 신부님과 환갑의 막둥이 아저씨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이야기해주신 걸 아빠에게 횡설수설 옮겼는데, 아빠는 그렇게 던진 말들을 잘 들어주었고 또 내가 설명한 것보다 더 잘 이해해주었다.

40일의 순례길 여행을 마친 사람들에 섞여 보낸 하루는 내 기대보다다 훨씬 따뜻하고 즐거웠다.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를 배낭 하나 짊어지고 걸어온 감회가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 베어 있었고, 걷는 속도는 다를 지라도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며 쌓아온 정은 여행객 사이에만 머물지 않고 나에게까지 따뜻하게 흘러 들어왔다. 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했겠지만, 나도 여행자분들을 통해 조금은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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