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디 Apr 07. 2020

내가 만났던 언니

“너 만나던 그 언니, 역시 신천지였나 봐.”

엄마가 집에 들어온 나에게 말했다. “그 언니”를 만나던 때에도 엄마는 그 언니가 사이비 종교일 거라는 말을 몇 번 했었고, 신천지와 코로나 바이러스의 연관성이 막 대두되기 시작했던 때만 해도 나는 “에이, 그 언니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마침내 엄마의 추측은 신빙성 있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즉, 최근에 알려진 신천지의 포교 수법이 “그 언니”와 내가 알게 된 계기와 완전히 일치했다. 

5년 전쯤, 내가 아직 대학생일 때 길 가에서 그 언니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다며 표본 수집을 위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언니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성향이 흔치 않은 표본으로 나왔다며 인터뷰를 부탁하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흔치 않다는 것이 왠지 기분이 좋기도 했고 심리 검사의 결과도 궁금했기에 그 언니의 제안에 응했다. 이 첫 만남이 계기가 되어 언니와 나는 일, 이 주일에 한 번씩 만남을 유지했고 언니는 가끔 내게 작은 선물을 주거나 작은 아카펠라 공연을 데려가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언니에게 들이는 정성보다 언니가 내게 들이는 정성이 훨씬 컸고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컸지만, 나는 그게 언니가 심리 상담을 하는 친구에게 느끼는 따뜻한 마음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진심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아무튼, 오랜 기간을 걸친 관계는 두 번의 갈등으로 파토가 났다. 첫 파토는 그 언니가 나의 심리를 상담해 줄 다른 선생님을 모셔온 날이었다. 그 날, 그 다른 선생님은 여러 가지 동물들이 나오는 심리 검사를 해주었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를 테면, 나는 원숭이, 독수리, 코끼리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선생님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너의 성향이 회사에서 이런 이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으며 자신과의 심리 상담으로 나의 단점들을 보완하여 공작새, 호랑이 등의 성향을 더 가진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 독수리 성향을 잃고 공작새가 되고 싶지 않으며,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심리 개발”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걸 계기로 이 상담 자체가 흐지부지 되어 그 언니와도 1년 정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 2018년 여름쯤 다시 그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쨌든 모호하게 끝난 관계에 다시 연락을 준 언니가 고마웠고, 나는 또 그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만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종교적인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의심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길거리에서 만난 심리를 공부하는 대학원생들, 연극 시나리오를 평가해 달라는 아마추어 극단 등은 항상 종교와 종교적인 고민 등에 물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종교 이야기를 하는 것에도 딱히 부담감이나 거부감은 없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부터 서로가 교회에 다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는 내 고민을 듣고는 나에게 함께 성경 공부를 하자고 제안해주었다. 그 뒤로 토요일에 한 교회에서 있던 성경 공부에 함께 가기도 했고, 평일 회사가 끝난 뒤 만나 언니와 카페에서 성경 공부를 하기도 했다. 친구와의 약속은 종종 미루는 나였지만 이 언니에게는 항상 내가 많이 받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퇴근 후 피곤함에 약속을 미루려다가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생각을 바꾸곤 했었다.

그러면서 언니는 자신의 종교적인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던 한 목사님의 교육 과정을 내게 추천해주기도 했다. 딱히 수락도 거절도 하지 않은 채 언니를 만나던 와중에 언니는 또 한 번 새로운 선생님을 데려왔다.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 분은 주로 종교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았고 나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민들, 특히 하나님의 사랑과 사후 세계에서 느끼는 괴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나나 그쪽이나 상대방을 이해하지도 이해시키지도 못한 채, 대화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과 동일하게 그 새로운 선생님이 먼저 자리를 비켰고 그 후에 언니와도 잠시 대화를 나누었지만 우리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서먹하게 헤어졌다. 며칠 뒤 다시 메신저로 연락이 왔지만 긴 시간 간격을 두고 안부인사만 나누었을 뿐, 그 후로는 다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았다.


근래에 퍼지고 있는 신천지 센터 목록을 바탕으로 내가 언니와 함께 갔던 교회의 주소지 근처를 찾아보니 금방 내가 기억하는 교회와 지리적 특징이 매우 흡사한 사거리, 1층 건물에 편의점이 있는 신천지 센터를 찾을 수 있었다. 비록 나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3-4회를 참석해야 하는 성경 교육, 전달받는 교재를 교회에는 비밀로 할 것 등 내가 들었던 안내 사항들도 모두 신천지의 포교 방식과 동일한 것들이었다.


그 언니를 돌이켜보며 은근한 충격이었던 것은, 나에게 그 언니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특히 나에게 그 언니의 핸드폰 번호가 없었다. 정말 가까운 사람 외에는 사람 관계나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나의 성격 탓도 있었고, 재작년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연락처들을 잃어버린 탓도 있었다. 사실 그 언니와 두 번째 연락이 닿았을 때는 번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대충 번호의 느낌으로 – 4가 많았다던가 – 아는 체를 하며 전화를 받았던 걸 보면, 마음 속 깊이는 이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연락할 때 느끼는 불편함에 눌렀을 법도 한 메신저의 ‘친구 추가 버튼’도 한 번도 누르지 않았던 모양인지 얘기를 나누었던 채팅방은 고사하고 친구 목록에서도 그 언니를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나에게 남아있는 흔적은 “비 오는 날 우연히 만났던 그 날 우리가 이렇게 계속 만나게 될 줄 몰랐었어.”라고 시작하는 포스트잇 쪽지 한 장인데, 이 쪽지는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 친구들 때문에 자신을 습관적으로 “쌤” 이라고 표현하던 언니의 모습과 더해져 다시금 그 모든 것이 신천지 포교를 위한 연기며 작전이었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 언니도 정말 심리 상담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으로 나를 만나다 내게 두 번째로 연락했던 그즈음 언저리에 신천지를 믿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신천지에 대한 뉴스와 블로그를 찾아보면서 신천지를 탈퇴한 한 전도사의 강연과 PD 수첩에 출연한 이만희 교주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특히, 이단 상담 연구소에서 근무한다는 전도사님은 신천지가 다른 이단들의 대비해서도 교리가 논리적으로 약한 편이지만, 전도 방식이 워낙 ‘악랄’해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취미 활동으로 시작해 일주일에 3-4번씩 만나다 보면 신천지라는 걸 알게 된 다음에도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끊어내기가 어렵고, 종교에 현혹되어서 보다는 일단 조금 더 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발을 들였다가 빠져든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도 최근 설교에서 신천지가 마음이 곤군한 청년들의 이름을 불러주니 청년들이 신천지에 쉽게 넘어가게 되었다면서 교회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재작년 추수감사절에, 교회학교 교사로 탈북 교회에 헌금과 쌀 등을 전달하는 일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각 교회마다 담당 교역자님들이 짧게 설교나 기도, 교회의 현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중 한 교회의 탈북민 목사님은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를 짧게 이야기해주었다. 마을의 목사님에게 전도를 받았다는 말에, 나는 전도하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중형에 처해지는 데 어떻게 그 사람을 따라서 하나님을 믿을 결심을 했는지 물었다. 목사님은 자신을 전도한 목사님이 전도하기로 마음먹은 뒤로도 자신이 목사임을 밝히고 실제로 전도하기 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했다. 그만큼 둘은 오랜 세월 동안 신뢰를 쌓아왔기에, 오히려 이 분이 목숨까지 걸고 전도를 한다면 믿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신천지가 그들의 전도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는 말에 나는 이 탈북 목사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걸 수도 있고, 남들이 다 손가락질하는 비정상적인 종교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것에 사람은 얼마나 강하면서도 약한 지를 느낀다.  

이제 와서 그 언니가 나를 어떤 의도로 만나왔던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고 언니에게 화가 나지도 않는다. 다만 전화번호도 저장하지 않았으면서 그 언니는 나름 나를 위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거라는 신뢰가 있어, 어쩌다 그 언니가 신천지를 믿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궁금증이 들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