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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디 Feb 26. 2021

그랜저 – 2021 성공에 관하여

모두를 위한 일상 속 착한 성공 ?

새해가 들어 TV를 볼 때마다 거슬리는 광고가 있다. 바로 그랜저의 “2021 성공에 관하여” 라는 캠페인으로, 유기견 입양, 상무님의 용기, 아들의 꿈 총 3편의 시리즈 광고이다. ‘모두를 위한 일상 속 착한 성공 - 그랜저, 2021 성공에 관하여’라는 슬로건 아래, 사회적 지위와 착한 마음과 행동을 겸비한 이 시대 성공한 사람들의 프리미엄 자동차로 신형 그랜저를 소개하고 있다.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그랜저가 자신들이 소구하는 “착한 성공”을 차별화하기 위하여 그랜저를 타지 않는 사람들을 착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주인공보다 더 젊은 직원은 성공한 직장 상사가 늙은 유기견을 입앙했다는 말에

“나이 든 강아지 키우기 어렵다던데” 라는 코멘트를 남긴다. 

이에 우리 주인공은 “힘들어도 챙겨야지” 라는 일침을 남긴다.

“상무님의 용기”편에서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용기를 들고 다니는 상무님에게 어린 직원들은

“사회적 책임 뭐 그런 거 아닐까?”

“그거 잘 모르겠는데, 사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라며 환경을 생각하는 상무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뉘앙스의 대사를 남긴다.


아마도 국내 최대 규모의 광고예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 그만큼 영향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 현대 자동차의 광고에서 이렇게 일반 소비자들의 윤리의식을 과소 평가했다는 것이, 또 착한 행동마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미덕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또한, 브랜딩 측면에서도 이런 연출이 좋은 선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친환경과 유기견 문제에 무지한 것으로 연출된 이 젊은 인물들이 (그러나 실제로는 착한 소비의 주체인 이들이) 바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20년 뒤의 미래의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랜저는 요즘 2030의 생각은 무시한 채 젊은이들에게 그저 무엇이 옳고 무엇이 성공한 삶인지를 자기의 방식대로 알려주는, 요즘 가장 기피되는 직장 상사의 모습 같은 서사를 남긴다. 


결국, 그랜저는 본인들이 정의해온 “성공”의 의미에 자가당착에 빠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랜저는 애초에 착한 자동차가 아니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자동차이며, 프리미엄 자동차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언제나 숙제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랜저는 오랜 세월동안 권력과 명예와 부를 갖춘 성공을 말해왔고, 그랜저를 타는 (혹은 탈 수 있는)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이 착하지 않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트렌드에 발 맞추어” 착함이나 환경, 동물권을 붙이다 보니, ‘너희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착하고 성공한 나’ 라는 캐릭터가 탄생한다. 가장 구차하게 자신을 올리는 일이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이 같은 그랜저의 표현 방식은 작년에도 많은 사람을 화나게 했는데, 올 해 다시 착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랜저는 그랜저를 가지지 않은, 그들의 잠재 고객을 하대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기견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는 그저 마케팅의 용도로 활용된다. 불쌍하고 가엾은 유기견이 고급스러운 복장을 한 주인공과 화이트크림 컬러의 신형 그랜저, 벽돌 건물이 아름다운 정갈한 거리에 놓여 있다. 과연, 유기견 입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랜저를 타는 사람의 착함을 연출하기 위해 아름답게 꾸며진 이 장면은, 유기견 문제를 다룬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특히 그랜저가 광고 커뮤니케이션 외에 유기견 관련 활동이 없다는 점이 더욱 이런 생각을 강화시킨다. 그랜저에 강아지의 편의(특히 노견)를 위한 옵션이나 장치가 있는 것이 아니며, 브랜드 차원에서 유기견 보호를 위한 특별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지도 않다. “유기견 입양”이 단순한 광고 연출의 수단일 뿐이라는 점은 그랜저가 2021년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로 삼은 “착한 성공”의 진정성에 다시 한 번 의구심을 품게 하며, 이는 “상무님의 용기” 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과연 “착한 성공”은 그랜저가 앞으로 계속 가져가고자 하는 가치일까? 그렇다면 단순히 광고의 스토리 보드뿐 아니라 그랜저의 포지셔닝과 기초 성능 및 부수적인 차량 사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착한” 성공을 단순히 2021년 성공의 트렌드라고 읽었다면, 그랜저가 생각하는 변하지 않는 성공의 정수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멋진 자동차가 무엇으로 다시 2022년의 성공에 대해 말하든,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며 본인들이 정의한 성공을 치하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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