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6개월

10년만에 온 스스로 생활하는 시간

by 이은디

한 달 전인 2월,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올 해 8월 프랑스로 MBA를 떠날 때까지 6개월 간 백수가 되었다.


MBA 지원과 입학 시기를 결정하면서, 퇴사는 꼭 2월에 하고 6개월을 쉬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원하던 학교에 합격한 뒤에도 파리에 간다는 것보다 이제 당분간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나를 설레게 했다.

퇴사 통보하기 전, 말 그대로 백수 퇴사이니 회사에 몇 개월 더 붙잡히리라는 부분이 가장 염려가 되는 부분이었고 (특히 나의 부서에는 이미 2개의 오픈 포지션이 있었다.), 그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여 2월 퇴사를 사수할지도 생각해 두었다. 이후 퇴사 소식을 들은 동료들도 대부분 늦어도 내가 4월쯤에는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 분들에게 입학은 9월이라는 것을 부연설명해야 했고, 그럼 자연스레 6개월 동안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이 따라왔다.


물론 조직 생활의 부조리에 느낀 자괴감이 쌓여가고 그게 역치에 다다른 게 큰 이유였지만 빠른 퇴사에 대한 열망이 무언가를 ‘안’ 하고 싶은 마음 만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주어진 일은 꼭 해야 하고 기왕 하는 거 잘 해야 하는 소시민적이고 성실한 사람이다. 그렇게 큰 야망 없이도 나는 회사원으로 주어진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도 느꼈다. 그러다 작년쯤 무슨 바람이 들어서인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간 뒤로 두었던 꿈이라 말하긴 거창한 하고 싶었던 일들, 인간 관계, 내 성격과 인격에 좀 더 시간을 집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입학 지원서를 쓰면서 자존감이 상승한 것도 이런 결심에 한 몫을 했다. 지난 직장 생활을 입학 지원서 용 자랑 거리 위주로 추리어 돌이켜보니, 그간 꽤 어려운 일들을 이루었다 싶었다. 그리고 회사 생활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무엇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결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6개월 뒤 내가 갈 곳은 정해져 있었고, 그렇다면 지난 6년과 같은 일을 다시 성실히 해내는 것보다 그 동안 못 이루었던 일들에 집중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10년 전,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한 학기 휴학을 한 적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심지어 운전면허 시험도 낙방하고 재시험 날짜도 잡지 못한 채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10년 뒤, 다시 한번 프랑스로 떠나기 전 나에게 6개월 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여전히 나는 외압 없이는 하루를 꾸려 나갈 수 없는 사람인지 나 자신을 실험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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