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사 기념하기

백수 생활의 시작

by 이은디

마지막 출근일에서 한 달쯤 전부터 자려고 눈을 감아도 분해서 잠이 안 올만큼 회사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곧 나간다는 생각으로 회사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은지가 8개월쯤 됐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정말 나갈 때가 되니 그간 흘러 넘겼던 불만들이 자꾸만 속으로 복기가 되었다. 그 즈음에는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요새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라며 푸념을 했다. 퇴사자의 배부른 불평을 들어주던 사람 중 한 분이 ‘그래도 적어도 우리 팀은 은지 일 잘 하는 건 다들 알고, 다들 좋아했어.’라고 말해주었는데, 누구에게나 해줄 법한 평범한 그 말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결국 내가 느낀 부조리한 시스템과 처우의 주체는 “회사”인데, 나가는 마당에 실질적으로는 그 누구도 아닌 회사를 향한 분노에 겨워 결국은 받는 이 없는 복수를 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후 나는 초록색, 빨간색 직장 정보 어플에 짧고 굵게 분풀이를 마치고 어떻게 지난 5년을 함께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인사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우선, 내가 함께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먼저 밥 약속을 청했다. 1년 넘게 프로젝트를 같이 하며 별것 아닌 얘기도 꼭 공유했던 두 동료, 유독 나를 아껴주었던 옆 부서의 팀장님, 직장이 가까워 종종 함께 점심을 먹고 출퇴근을 함께했던 나의 친언니, 내가 인턴일때부터 약 6년을 함께 일했던 디자인 에이전시…

특히, 디자인 에이전시 분들과는 처음으로 사무실이 있는 양재동에서 밥을 먹었다. 사실 같이 일하는 중에도 밥을 같이 먹은 건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라 평소에 나였으면 굳이 식사를 청하지 못했을 텐데,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만나 뵙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진행했던 업무들을 이야기하며 나에게는 일정이건 품질이건 너무 수월하다 싶게 진행되었던 프로젝트가 에이전시 사장님이 중국의 오지에 몇 번이나 출장을 가서 만들어준 결과물이라는 걸, 나는 기억도 나지 않은 몇 년 전의 전화 통화에 에이전시의 실장님은 갑을 의식 없이 자신들을 믿어주어 고마워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청했건 그렇지 않건 그 외의 많은 식사자리가 그랬다. 사람들은 사소한 계기들을 모아 나를 좋아해주었고, 마음 속으로는 ‘사실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싶은 썩 괜찮은 사람의 인상으로 나를 생각해주었다. 평소에는 굳이 말하지 않는 인간적인 관심과 호의의 표현을 듣는 것은 퇴사자로 누릴 수 있는 감사한 일 중에 하나였다.



또 출, 퇴근 길에 틈틈이 마음 속으로 퇴사 메일을 썼다. 지난 두 번의 퇴사 때는 모두 퇴사 메일을 쓰지 않았다. 나는 카카오톡의 생일 알림도 굳이 설정을 찾아 들어가 꺼 놓는 그런 유형의 관종이었다. 내 소식을 굳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고, 또 사람들과 형식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인사를 나누는 게 민망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퇴사 한 달 전까지는 아무 말없이 나갈 생각이었지만, 행복한 끝 인사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나니 오히려 퇴사 메일을 어떻게 쓰고 나갈지가 나의 중요한 마지막 업무가 되었다. 회사 전체에 메일을 보낼 일이라곤 신제품 출시 사내 이벤트 밖에 없었는데,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모든 회사 사람들이 읽을 거라 생각하니 그래도 무언가 의미 있는 말을 남기고 싶었다. 될 수 있는 한 짧게, 그렇지만 작은 여운이 있는 말을 여러 날 동안 고민하다가,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한 구절을 빌려 짧은 인사말과 함께 남겼다.


이제 그들은 인간이 언제나 욕구를 느끼며 가끔씩은 손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스트, 알베르 까뮈


생각지 못하게 마지막 날까지 미팅도 2개나 있어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을 만큼 일이 바빴는데, 미리 마음 속에 메일을 써 놓은 덕에 다른 분들이 퇴근하기 전에 퇴사 인사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만에 가득 찼던 나를 다독여주던 선배는 아래와 같은 답장을 주기도 했다.


습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느는 탓에 우리는 갑자기 몇몇 익숙한 사람들과만 사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지금 단계에서 너처럼 멋진 새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을 굉장한 행운으로 여겨.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5년 전 이전 회사를 떠날 때, 별로 가깝지 않았던 재무팀의 과장님이 나가기 전에 차라도 한 잔 하자며 나를 불러준 일이 있다. 그 과장님은 늘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지적 받아온 나의 목소리에 대해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가 은지씨가 가진 힘이 될 거라고, 팀 내 사람들과 다르게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 또한 팀에 다양성을 주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 뒤로 연락 한 번 주고받은 적 없지만, 자존감이 떨어질 때나 나의 방식이 의심스러워질 때 그 때의 그 말은 여전히 내게 격려가 된다.


또 다시 이렇게 아름다운 안녕을 기했던 많은 사람들과 서서히 연락은 끊기게 될 것이다. 아무리 말을 아꼈다 해도, 마지막 인사로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보다 더 넘치는 말들로 이별을 기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뭐 어떤가. 조금은 과장된 말이더라도 한 번쯤 은 서로에게 애정과 감사를 나눌 수 있어 참 행복했다. 퇴사라는 좋은 핑계를 기념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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