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의 기억
과거라는 것은 사실 지나가고 없는 것이다.
현재가 아닌 추상적인 개념이므로 단지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것마저도 내가 재구성해낸 허구와 진실이 뒤섞여 어떤 것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거를 되돌아본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거의 첫 시작은 14살 혹은 15살의 나와 소파에 대한 기억이다.
소파에 앉아 본 적이 있는가.
소파에 앉아있으면 세상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나는 관람자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와 소파를 제외한 모든 세상은 움직인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야근 후 집에 가는 자동차,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는 여성, 지구 저 반대편에서 과일을 팔고 있을 외국인
그리고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똑딱. 똑딱. 똑딱.
컴컴한 영화관에 홀로 앉아 영화를 보듯,
나를 태운 소파는 우주 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공간도 시간의 흐름도 없는 곳.
그저 나의 의식만 라디오처럼 흘러나온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지금은 언제.
난 뭘 하고 있지.
거기 누구 없어요 ?
나를 태운 소파는 홀로 우주 속을 떠돌아다닌다.
아무것도 없는 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 진공 같은 곳.
학교에서 돌아와 해가 져 컴컴해질 때까지 소파에 앉아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빛처럼 나도 사라져간다.
내가 가진 거라곤 그저 내 이름과 의식뿐이었던 시절.
내가 존재하는 몸뚱이 안에서 내 의식만 메아리친다.
이게 내 15살의 기억. 친구와 놀았던 기억,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던 기억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그때와 같이 내가 가지고 있던 전부, 의식만이 남았다.
꿈꾸는 아파트. 꿈밖에 꿀 수 없는 괴로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내가 유일하게 했던 건 꿈을 꾸는 것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밤거리를 걷던 나,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잠깐 정신을 차린다. 자동차가 성나게 내 앞을 지나간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튼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
귀머거리가 된 베토벤은
어떻게 절망 속에서 환희를 찾았던가.
왜 하필 소파냐고 한다면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거실에서 앉을 데라곤 그 갈색의 내 키만큼 길고,
앉는 부분이 내 어깨넓이밖에 안 되는 좁은 소파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 혼자 큰 집에 있을 땐 집의 중심부인 거실에 있고 싶다. 집 전체에서 한 구석에 처박힌 내 방에 있으면 집의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소위 누구나 한번쯤 겪는 아버지의 부도로 나 혼자 집에 남겨졌을 때였다. 아빠는 지방에서 돈을 벌고자 노력하고 계셨고 엄마는 백화점에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고 오빠는 어디 갔는지 모르고. 학원 갈 형편도 아니다 보니 친구와 노는 날이 아니면 집에 왔다.
당시 우리 집 65평. 무리한 사업 확장의 결과로 저당 잡힌 큰 집에서 덩그러니 나 혼자 있었다. 뭐 딱히 가구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빨간 딱지가 붙여져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이라곤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고 인터넷 좀 하다가 그것도 싫증나면 그냥 소파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파에 있다 보면 어느 새 해가 진다. 해가 지고 컴컴해진 집에 있다 보면 무서운 것보단 어둠이 익숙해진다. 그 나름의 포근함과 함께
나도 어둠 속에 잠식되어가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대체 뭐하고 있는 걸까.
어둠 속에 파묻혀서 나의 존재도 사라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럴 땐 필사적으로 내게 되묻는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너는 누구니. 난 나야. 너는 뭘 하는 중이니. 난 생각하는 중이야. 넌 뭐가 되고 싶니. 밝은 햇살 속에서 당당히 걸어가는 커리어우먼. 그럼 지금 뭐하는 거야. 니 꿈을 위해서 빨리 노력하지 않고 뭐해. 이 게으른 놈, 멍청이, 쓸모없는 놈, 낙오자. 자책은 나를 일으키게 하기 위한 채찍질이었다. 이대로 사라져버리지 마. 죽지 마. 계속 숨을 쉬어. 너마저 너를 포기하지 마. 나의 발버둥. 미칠 듯 한 고요 속에서 난 홀로 싸우는 중이었다. 설령 남이 보면 게으르게 소파에 누워있다고 생각할지라도 난 홀로 발버둥 중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이해 못할 것 같은 나의 심연
고독한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