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한 인간은 방황하는 법이다
밤길을 걷는다.
2014년 1월 8일 밤 10시경, 분당시 오리역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알바를 마치고 집까지 밤길을 걸어간다. 걸어가는 길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연 입김과 번쩍이는 거리의 네온사인, 위엄 있게 서 있는 가로수의 등불로 밝혀진다. 휴학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휴학동안 무엇이 바뀌었는가. 겨울의 추운 저녁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 도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내 옆을 지나가는 직장인들 그리고 연인들. 갖가지 시끄러운 소리들은 뒤섞이지만 은근한 질서를 가지고 최면을 걸듯 내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나는 무엇을 얻고자 했던가. 내가 찾고자 함은 무엇이었던가.
몇 달 전, 군대에서 장기 휴가를 나온 오빠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오빠 나 좀 도와줘.
나의 부탁을 들어준 오빠, 자연스럽게 엄마와 나의 자리를 만든다. 장소는 집 근처 새로 개업한 맥줏집. 주황색과 노란색 빛이 뒤섞이고 고소한 츄러스 냄새와 흥겨운 팝 노래가 흘러나온다.
엄마, 얘가 휴학을 하고 싶대. 내 생각에 충분한 이유만 있다면 해도 괜찮을 것 같아.
내 앞 거대하고 무거운 와인 잔 같은 것에 코로나 맥주가 담겨있고 그 안에 탄산이 레몬과 엎치락뒤치락하며 톡톡 터지고 있다.
무슨 소리야. 뭘 하고 싶은데. 휴학을 꼭 해야만 하니. 그냥 학교 다니면서도 할 수 있잖아.
나는 침묵한다. 눈으로 잔속에 담긴 탄산을 바라본 채 생각한다. 내가 말한들 엄마가 날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껏 몇 년간 나를 엄마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아니 나조차도 날 이해할 수 없는데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이성적이신 분이.
휴학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렇다. - 지금 난 죽어있다.
우울하고 좌절하고 비참하고 허무하고 씁쓸하고 답답하고 원망하고 억울한 감정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난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다. 이 상태로 죽어도 상관없다. 이 상태로 살아도 상관없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가 없다. 난 정말 죽어있었다. 감기에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하면, 목에 상처가 나기 때문에 숨 쉴 때마다 고롱고롱 거리게 된다. 고롱고롱. 감기에 걸린 게 아닌데 자꾸만 숨 쉬는 게 힘들어진다. 이런 상태를 엄마에게 말한들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문제의 뿌리는 정확히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데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시간은 흘렀다. 내 앞에 놓인 음식들은 사라졌고 우리 테이블 옆에 있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가게 주인과 종업원들은 심각한 상황을 보고 가게 문을 못 닫고 밖에서 눈치만 본다. 나는 울고 있다. 엄마는 옆에서 소리치고 있고, 오빠는 제어 안 되는 상황에서 이성적이고자 노력하고 있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내 팔을 박박 긁는다. 내 자신이 혐오스럽다는 듯이 내 팔을 쥐어뜯고 있다. 내 머리도 쥐어뜯는다. 소리친다. 죽고 싶다고. 내가 엄마 앞에서 이런 소리를 대놓고 할 만큼.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나한테 시간을 좀 달라고. 내가 도저히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은데, 내가 못하겠다는데 왜 내가 내 자신한테 시간을 주는 걸 엄마한테 허락을 맡아야 하냐고. 돌아오는 길. 뒤에 한참 떨어진 엄마가 운다. 자신이 뭘 얼마나 못해줬냐고.
이때의 나는 들리지 않는다. 들려도 슬프지 않다. 그저 생각한다.
언제쯤 모든 게 끝날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