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예술하기의 예술

복합문화예술공간 '에스빠스 리좀'의 숨은 예술가들

by 손상민

2009년 창원에 정착한 후 줄곧 바라왔던 예술영화관 '씨네아트 리좀'을 찾은 것은 2013년 리좀이 개관한 지 5년이 훌쩍 지난 올해 3월이었다. 그마저도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2018년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퍼실리테이터로서로서였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예술인 파견을 원하는 기업이나 기관에 8~9개월 동안 3~4명의 예술인이 매달 30시간 이상씩 참여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업을 말한다.


내가 맡은 퍼실리테이터라는 직책은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예술인과 기관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며 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매니저에 가깝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매년 이러한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위해 전국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퍼실리테이터와 참여예술인을 모집하고 있다.


파견지원사업으로 만난 '리좀'

나는 올해 창원에서 이 사업에 참여한 유일한 예술인이자 퍼실리테이터로 이미 2016년과 2017년 참여해 여러 예술인들을 만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극작과 시나리오, 에세이 등 다양한 글작업을 통해 관객과 독자를 만나려 노력하지만 실상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과의 교류가 쉽지 않은 골방에서 글만 쓰던 내가 파견예술인지원사업을 통해 '이불 밖'을 나온 것은 고무적이다. 게다가 파견예술인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기간동안 받게 되는 수입 역시 매년 이 사업에 지원하는 큰 동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 파견지원사업에서 우리 기관(ACC프로젝트협동조합)에 배치된 예술인은 퍼실리테이터인 나와 마술사 임태홍 씨(부산) 단 둘이다. 통상 1명의 퍼실리테이터와 3명의 참여예술인이 배치되는데 반해 지원 예술인의 수가 너무 적었던 탓에 벌어진 참사다.


지원 예술인의 수가 적었던 데는 동일 지역에서 이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이 나를 제외하고는 전무했던데서 원인을 찾는다. '거리'는 예술인이 기관을 선택하고 기관이 예술인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좀을 찾기 전만해도 나는 이번 사업에서 마술사 이외의 예술인을 만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었다. 큐레이터이자 실질적 운영자이신 하효선 대표님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3.jpg '시네아트 리좀'의 대표이자 '갤러리 리좀'의 큐레이터인 하효선 대표(오른쪽)와 임태홍 마술사(왼쪽).



오는 6월부터 국내 레지던스사업이 시작되면 여섯 명의 작가들이 입주할 거예요.
7월부터는 국제 레지던스사업이 시작되고요. 다양한 국적을 가진 7~8명의 작가들이 입주해서 작업할 거고요.


예술인이 둘밖에 없을 거라는 건 완전한 기우였다. 국내외 입주작가들이 모두 모인 현재 리좀은 15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따로 또 같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적으로는 프랑스,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온 해외 작가들과 지역으로는 서울, 대전, 창원 등 각지의 예술가들이 한데 섞여 있다. 장르도 회화부터 설치, 비디오,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영화감독, 소설가, 극작가, 마술가까지 다종다양하다. 결국 나는 올해 하반기 대표님이 그리는 '큰 그림'을 접하고는 어떻게든 하반기 리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글로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이며 나 자신이 진행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ACC프로젝트와 ACC프로젝트협동조합

Art와 Cinema Communication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ACC프로젝트는 예술영화관인 시네아트 리좀 외에도 갤러리, 카페, 게스트하우스를 기획,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이다. 이들 공간은 마산 창동의 한 건물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 1층에는 시네아트 리좀이 3층에는 갤러리와 카페 에스빠스 리좀이, 4층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자리해 있다. 2014년 경영난으로 폐관 위기를 맞았으나 많은 시민들의 응원으로 기사회생한 시네아트 리좀은 51석 규모의 소규모 영화관임에도 불구 연간 200편 이상의 다양성 영화들을 상영중이다.

ACC프로젝트가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기획들을 실천하는 영리법인으로서 설립된 것이 ACC프로젝트협동조합이다. 이둘은 상호보완적인데, ACC프로젝트가 소프트웨어라면 ACC프로젝트협동조합은 하드웨어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하겠다.


리좀

리좀(Rhizome)은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의 저서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1980)의 입문적 표제어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하면 지금까지 서양의 사유는 중심이 있는 나무를 모델로 삼아왔는데 정신분석학·언어학·계보학·이원론에서도 드러나듯 서양의 지식을 지탱하는 것은 이런 나무 형태의 사유였다. 이러한 수목구조의 반대 개념이 '리좀'인 셈인데 나무처럼 땅에서 하늘로 질서정연하게 자라지 않고 땅에서 땅속을 향하며 다양체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중심이 없고 수평적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연결체이다.


예술인 레지던스사업

ACC프로젝트협동조합 대표님 지인의 말로는 '예술인들의 집짓기사업이냐?'는 궁금증을 자아낸 사업명이나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예술인들의 거주형 창작활동 지원사업이다. 리좀에서 이루어지는 국제레지던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며 국내레지던스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았다. 레지던스 입주작가들은 일정기간 동안 해당 공간에 머물며 자신의 창작활동을 지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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