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작가 인터뷰1) 비르지니 로케티가 본 3 .15의거
그곳에 서면 사면이 바다다. 마산지방해운항만청에서 1985년 준공한 육각형 모양의 6층짜리 관제탑은 사면을 통유리로 만들어놓아 어디에서나 바다가 보인다. 좁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 꼭대기 바로 아래층인 5층에 오르면 푸른빛 바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옛 마산의 영화를 간직한 이 탑은 1998년 이전한 후 줄곧 비어있었다.
ACC프로젝트협동조합은 현 마산지방해양수산청의 정식허가를 받아 이곳을 올해 6월부터 국내외 레지던스 입주작가들의 아뜰리에로 사용하고 있다. 바다를 보면서 작업할 수 있어 더없이 즐거웠다는 프랑스에서 온 두 명의 부부 예술가를 관제탑 5층 그들의 임시 아뜰리에에서 만나보았다.
인터뷰는 7월 6일 입국해 8월 5일 출국하는 날까지 ‘뜨겁게’ 작업했던 비르지니와 마르시알이 출국하기 전날인 4일, 하효선 대표의 통역으로 이루어졌다. 이날은 마산해양신도시조성사업으로 가벽으로 둘러싼 일대에 이들 두 사람의 작품을 붙였던 날이다. 이날 낮 최고 기온은 37도에 육박하며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상민_ 이전 작품들에서 데생과 자수, 사진, 멀티미디어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소소사의 3.15’라는 테마로 약 한달 간 작업했던 이번 레지던스에서는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비르지니_ 데생, 자수, 사진 등 재료가 다르기는 하지만 작품의 재료를 선택할 때 연속성을 염두하고 작업합니다. 물론 각각의 재료가 가지는 차이도 있습니다. 지금 이곳 마산에서 했던 작업은 회화인데 주로 이미지적인 표현으로 작업하던 이전과는 달리 사실적인 표현을 섞었고 이는 저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마르시알과 같이 작업하면서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동시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저만의 상상 속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앞에 보이는 (인터뷰를 하던 비르지니의 정면 벽에는 그가 신문지 위에 작업한 그림 15장이 차례대로 붙여져 있었다.) 작품을 보면 여러 가지가 보일 것입니다. 3.15의거에 관계된 과거의 인물이거나 이곳에서 만나 함께 지금을 살고 있는 현재의 인물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미지도 보이실 겁니다. 하얀 동그라미가 있는 세 개의 그림이 보이시나요? 그림을 그릴 때 비쳤던 햇빛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신문지 위에 그린 그림들 중 일부는 일부러 흩날리도록 해놓았습니다. 이 모든 장치가 환상과 현실을 뒤섞은 환상적인 느낌을 전달합니다.
상민_ 신문지를 활용한 회화작업 역시 처음인가요?
비르지니_ 저것은 이곳 지역의 신문입니다. 지역신문 위에 페인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곳에 오기 전 아이슬란드에서 레지던스를 할 때도 그 지역신문을 활용해 작업을 했습니다. 여행이나 레지던스를 할 때면 저는 흔히 그곳의 재료를 충분히 이용하고자 합니다.
상민_ 신문지 위에 먹으로 작업하셨습니다. 먹은 아시아에서는 흔한 재료이지만 서구에서는 선택하기 쉽지 않은 재료입니다. ‘먹’을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비르지니_ 먹을 이용한 회화작업이 처음은 아닙니다. 아이슬란드에서도 먹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재료가 부족했어요. 이번에는 충분했지요. 먹은 충분히 매력 있는 재료입니다. 신문지와 먹을 이용하는 것은 비교적 저렴한 재료들이어서 생태학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한때 동양화를 배운 적도 있어서 먹과 같은 동양적 재료들에 익숙하기도 합니다.
상민_ 마산 이외에 참여했던 레지던스와 그때의 주제들은 무엇이었나요.
비르지니_ 아이슬란드는 저의 첫 레지던스였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지역신문을 가지고 작업했습니다. 그때 테마가 있었는데 고래와 같은 큰 포유류를 보호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상당히 큰 설치작업을 했어요. 3월과 4월 2개월 동안이었는데 이후 3년 동안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이후에 라 카브 포에지라는 프랑스의 큰 섬에서 설치작업을 했어요. 레지던스에서 테마가 주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저는 레지던스의 테마를 작품화할 때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럼으로써 레지던스가 끝나더라도 주제는 이어지고 제 안에서 내재화됩니다.
상민_ 레지던스 주관기관에서 제시한 공통의 주제를 개인적인 작업으로 발전시킨다는 의미인가요.
비르지니_ 네. 아이슬란드에서 마주했던 환경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인 것처럼요. 1년 후 개인전을 열 생각인데 주제가 ‘기쁨’입니다. 환경문제라고 하면 모두들 무겁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환경오염이 인류가 직면한 무겁고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쁨’이라는 걸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마산에서의 주제인 ‘3.15의 소소사’ 역시 제가 하려는 작업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저의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언제나 실재하는 것과 환상, 꿈이 뒤섞여서 어울려지는 형태를 봅니다. 있는 그대로의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환상, 꿈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죠. 판타지는 현실 속에 있습니다.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상민_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관심사나 주제가 정해져 있는지 혹은 변화해 왔는지 궁금합니다.
비르지니_ 아이슬란드에서 고래를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고 이것은 ‘기쁨’이라는 주제로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반된 주제로 변화한 것이지만 예술가로서의 저는 현상이나 상황을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평가처럼 비평을 하게 되면 네거티브한 방식을 취하게 되고 그것은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저는 팍팍한 현실에서 예술이 숨은 즐거움을 찾아내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상민_ 레지던스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이곳 마산에서의 작업은 당신에게 자극 혹은 영향을 주었습니까. 자극이나 영향을 받았다면 어떤 걸까요.
비르지니_ 당연히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기서는 현실에 천착한 채 꿈이나 환상을 결합시키는 다른 방식의 이미테이션을 해보았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으므로 새롭게 표현하였지요. 새로운 생각으로 발전시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편적으로는 인물화를 그리면서 그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마주한 벽에 붙은 저 그림들 중에는 3.15의거의 중심인물(그는 3.15의거에 대한 글, 이야기, 장소를 접하고 김주열을 그렸다.) 외에도 레지던스 기간 중 자주 가던 식당주인아저씨, 레지던스 동료인 니콜린과 사라부뜨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신분, 정체성, 알고 있는 정보 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민_ 오늘 작업한 가벽에 붙여진 그림을 보았습니다. 검은 실루엣의 군중들이 일렬로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입니다. 프랑스혁명의 저 유명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신이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비르지니_ 당신이 본 군중 속에는 시위대뿐만 아니라 군인과 경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혁명을 이끈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참여했던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위대를 막아야했던 경찰이나 군인조차도 역사를 만든 거대한 물결의 일부였어요. ‘소소사의 3.15’를 다루면서 그 점을 의미 있게 다루려 했습니다.
상민_ 유튜브에서 공장용 자수기계를 가지고 드로잉을 한 후 자수를 만드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유튜브에서 비르지니 Virginie의 철자를 검색하면 TV프로그램에서 촬영한 영상이 보인다.) 자수로 표현한 드로잉들이 괴기스럽게 느껴지면서도 굉장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환상에서 어두운 부분일까요.
비르지니_ 자수로 그려진 드로잉은 요정들입니다. 꿈과 환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제 안에 그늘일지 모르지만 이것을 어둡고 괴기스럽게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어둠이 과장되거나 재미있거나 그렇겠지요. 현실의 그늘은 단지 ‘그늘’에 불과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로테스크하다기보다 미스테리한 그림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상민_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작업하셨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의외로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7월 21일(이날은 ACC프로젝트협동조합의 국내외 입주작가들의 소개와 국제 레지던스 입주작가들이 만든 영상물, 퍼포먼스가 상영·상연되었다.) 상영된 멀티미디어 작품도 환영처럼 떠도는 무언가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비르지니_ 멀티미디어는 우리 시대에 매우 적합한 도구입니다. 중심이 되는 것은 놓치지 않으면서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보는 것을 지향합니다. 드로잉 자수작업을 예를 들면, 자수를 직접 일일이 수놓지 않고 재봉틀을 이용하지만 실제로 자수를 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컴퓨터 조작은 쉽고 손으로 작업하는 것은 기술과 노력이 수반됩니다. 컴퓨터로 하면 매우 쉽고 빠르지만 손작업을 게을리 해서도 안돼요. 기술을 예술에 접목하면서도 기본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민_ 이곳 관제탑 6층에도 당신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난번 상영된 멀티미디어 영상물과 유사한 이미지의 사진들인 듯 한데요. 작품들 모두 제각기 다르면서도 무언가 지향하는 바가 동일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비르지니_ 저는 섞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이미지 안에 이미지를 겹쳐서 경계를 흐리게 만듭니다. 물에 비친 그림자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그림자는 경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투명한 현실이라는 게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모든 건 중첩적입니다. 그것이 더 ‘실재’에 가깝습니다. 이미지 뒤에는 언제나 또 다른 이미지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상민_ 이제 곧 프랑스로 돌아가게 됩니다. 마산에서 보낸 한 달은 어땠나요.
비르지니_ 덜 신경질적이 되었달까요. 매일 빠짐없이 이곳에 나와 작업을 하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한국이 바캉스시즌이어서인지 쉬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프랑스로 돌아가면 여기서 만난 다른 한국인 입주작가와도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작업을 지속하고 싶어요. 마산에서의 작업은 끝났지만 프로젝트는 계속 될 것입니다.
비르지니 로케티(플라스틱 작가)
1963년 11월 15일 엑상프로방스 생
파리근교 거주 www.virginirochetti.com
[학위, 학력]
- 국립장식미술전문대학원 졸업, 원근화법 전공, 파리, 1989,
- 4년 간 리샤르 페두찌 교수의 조교 (파트리스 쉐로, 뤽 봉디 연출의 연극, 오페라, 시네마. 앙드레 퓌트만 편집의 모빌리에 디자인. 원근화법과 경향노트를 위한 채색 작업)
[개인전]
- 에다 발렌느를 위하여, 로슈-귀용 성, 2017 7. 14 ~ 11. 25.
- 섬의 저널, 갤러리 KO21, 2017 2. 23 ~ 3. 16.
- 전쟁, 자수, 갤러리 이시 몽트레이유, 몽트레이유, 2016 2월.
- 실로 그린 데생, 데생 및 자수, 갤러리 라빌아데자르, 2015 10월.
- 갤러리 드 트리통, 레 릴라, 2014 5-6월.
- 데생 및 자수, 갤러리 뤼진, 파리, 2013 11월.
- 자수 및 데생, 아미티에 릿, 몽트레이유, 라 비 드 뷔로, 2012.
- 체 체, 위블로 디브리, 2012.
[퍼포먼스]
- 고래의 에다를 위하여, 퍼포먼스, 로슈-기용 성, 2017 11. 25.
- 왜 수평선은 발코니의 휘어진 막대를 따라가지 않는가, 파비엔느 이베르 및 아더 다이그와 함께, 툴루즈의 시 동굴, 2017 4월; 유일한 장소, 낭트, 2016 2월; 장 마레 극장, 셍 그라티엥, 2015 12월; 메종 드 포에지에서, 파리, 2014 12월; 알베르 샤노 센터, 클라마르, 2013 3. 10.
- 나의 살, 브징 갤러리 자르댕 데로스, 크리스틴 코스트와 세실 야르사이용과 함께, 파리, 2016 7. 7.
- OVNI, 알렝 와그네와 함께, TK21, 갤러리 라 빌 아 데 자르, 2016 11월.
- 범주들의 인간, 브징, 이누이트 스위니시치와 함께, 페스티벌 드 레첼, 2015 5월.
- 헤라클리트와 민주주의, 시인 자크 르보티에와 함께 투사된 이미지 퍼포먼스, 로슈 귀용 성에서 창조, 5월 19일, 세르쥬-퐁투아즈 국립 극장에서 2013년 5월 21일.
- 2012년 5월, 몽트뤠이유 메디아테크에서 파비엔 이비르와 ‘텔레스코파쥬’(융합/충돌)라는 제목의 이미지 투사 퍼포먼스.
- 2010년 9월, 일 드 레이니용의 국립 드라마 센테에서 자크 르보티에의 연출과 무대 디자인으로 비디오자키가 투사한 ‘내 작은 시장’이라는 제목의 이미지 퍼포먼스.
[출판]
- 중요한 사육제, 전문연구서, 시프롱 콜렉션, 솔로 마 논 트로포 출판사, 2015년 10월.
- 가족의 삶, 전문연구서, 카르네 비쥬엘 콜렉션, 솔로 마 논 트로포 출판사, 2015년 5월.
- 알고리즘의 붉은 실, 전문연구서, DMC 출판사, 2014년.
- 다니엘-드니즈와 프랑수아즈 쿠쟁이 책임 편집한 수놓기의 배우들, 누가 무엇을 그리고 어떤 이를 위해 수를 놓는가? 중에서 크리스틴 페이레의 컴퓨터가 참여한 자수(刺繡) : 현대 예술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 AFET 출판사, 2013년.
[레지던스]
- 다수 프랑스 레지던스와 아이슬랜드, 스카가스트론드, NES 아티스트 레지던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