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작업의 전환점으로

입주작가 인터뷰2) 마르시알의 뜨거웠던 여름

by 손상민

비르지니와 함께 레지던스에 참여한 마르시알은 비르지니의 예술가 동지이자 부부로서 활동한다. 마르시알은 지난 2016년 ACC프로젝트협동조합의 <공상실록> 전시 참여자이기도 했다. 비르지니에 이어 불볕더위에 가벽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마르시알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지난 7월 6일 입국해 8월 5일 출국하는 날까지 ‘뜨겁게’ 작업했던 비르지니와 마르시알을 출국하기 전날인 4일, 하효선 대표의 통역으로 이루어졌다.


0804-9.jpg 관제탑 주변 가벽작업을 마치고 아뜰리에로 돌아온 마르시알 베르디에.


상민_ 관제탑 주변 가벽작업이 이제 막 끝났습니다. 가벽에 붙인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마르시알_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일이면 프랑스로 돌아가겠지만 작업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가벽에는 13개의 인물 사진을 붙였는데 3개의 인물사진이 더 남아있습니다. 사진은 제가 아니더라도 붙일 수 있지만 현재의 작업을 프랑스로 돌아가서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이번 작업은 제게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 가지 다른 색을 써서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은 이전에도 시도한 적은 있지만 좀 더 시적인 방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리엔탈리즘, 한국적 분위기 등의 영향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더욱 새롭고 다른 느낌으로 발전했어요.


0804-3.jpg
0804.jpg
0804-1.jpg
관제탑 가벽에 설치한 마르시알의 군중 작품 중 일부.




한 혁명의 상징적인 인물들

봉기, 저항, 혁명


정치적 봉기는 그것을 야기하거나 이끌어가거나 아니면 그것을 저지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물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상호경쟁심과 시너지 효과야말로 이러한 운동의 동학을 추동하며, 그들을 성장하게 만들고 그들이 영광스럽거나 비극적인 또는 어두운 운명을 지향하도록 만든다.

이 개인들은 더 이상 아무나가 아니라 원형적인 인물이 된다.

각각의 개인들은 장소와 시대에 따라 조명된다. 어떤 개인들은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중요한 인물이 있다면 부차적인 인물도 있다.

역사를 완성하는 것은 대인만이 아니다.

- 마르시알 베르디에 -





상민_ 가벽에는 13명의 인물들이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입주작가들과 이곳 대표님 등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는데요. ‘소소사의 3.15’라는 주제의 이 같은 가벽작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마르시알_ 원래 레지던스를 시작할 때 하고 싶었던 건 아주 큰 인물사진입니다. ‘소소사의 3.15’를 주제로 작업하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시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개선하고자 했던 의지입니다. 현재 가벽에 설치한 13명의 인물들은 제가 이곳에서 평소 만나왔던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3.15의거에서의 상징적 인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함께 모여 변화를 일으키려는 그룹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이들 인물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세 가지 색으로 포즈가 중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평소 좋아하는 방식인데, 하나가 아니라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또 하나 제게 있어 마산에서의 작업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레지던스 경험을 가졌지만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새로운 작업의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어찌됐건 흔하지는 않은 일이어서 제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상민_ 마산에서의 레지던스에서 시도한 작업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니 기쁜 마음입니다. 레지던스 기간 중 자극을 받으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마르시알_ 개인적으로 항구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 아뜰리에는 제게는 정말 환상적인 공간이에요. 어떤 날에는 바다에 배 지나가는 모습만 보아도 작업의 욕구가 솟구칩니다. 여기 있는 동안 상당히 많은 양의 사진과 비디오를 찍었습니다. 이 자료들을 가지고 프랑스로 가서 적어도 1년 이상은 이와 관련한 작업을 해볼 생각입니다.


상민_ 타국민으로서 ‘소소사의 3.15’라는 주제가 어렵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마르시알_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번 작업에서는 정치적 문제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한국의 촛불시위는 매우 중요한 민주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사건을 접하면서 제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다시 들어와 촛불시위 이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머문 마산은 특히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복잡하고 큰 대도시가 아닌 점이 매력적입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정도의 인구규모인 점도 마음에 듭니다. 서울과 부산 역시 좋아합니다. 코스모폴리탄적 느낌과는 다른 환경과 분위기가 있습니다.


0804-6.jpg
0804-7.jpg
마르시알이 한국에서 작업한 사진작품들. 그는 이 작품들을 아뜰리에가 있는 관제탑 6층 공간에 전시하기도 했다.


상민_ 프랑스에서 한국의 촛불시위에까지 관심을 가지셨다니 놀랍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예술작업에 연계해 작업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마르시알_ 정치적 견해로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치적인 주제로 작업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물론 영감은 받을 수 있겠지요. 직접적인 방식의 접근이 아니라 예술가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술가의 의식으로서는 중요하다 생각하지만요. 주제로 나타낼 때는 간접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상민_ 사진과 비디오를 활용해 많은 작업을 하셨습니다. 예술가로서의 관심사를 표현하는 데에 특별히 사진, 비디오를 활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마르시알_ 저는 사진학교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에꼴 드 보자르(프랑스국립미술학교) 출신이에요. 회화를 했는데 그쪽 방면으로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저의 교수님께서 제게 사진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결국 이렇게 사진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제게는 사진과 멀티미디어가 가장 좋은 표현도구입니다. 설치미술도 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 보려 하고 있습니다.


상민_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주제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이 변하는지 고정된 것인지도 알려주세요.

마르시알_ 저는 세 가지 테마를 가지고 작업해 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물이며, 두 번째는 나체, 세 번째는 원자력발전소입니다. 한국에도 원자력발전소가 많아 한국은 여러모로 저의 관심사입니다.


상민_ 세 가지 모두 뭔가 이질적인데요. 이와 같은 세 가지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마르시알_ 인물은 제가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꾸준히 작업하는 주제입니다. 나체는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을 나체에서 볼 수 있지요. 원자력발전소는 타나토스를 연상시킨다는 측면에서 연결된 관심사입니다.


마르시알1.jpg
마르시알4.jpg
마르시알6.jpg
마르시알2.jpg
마르시알5.jpg
마르시알이 칼로티프 방식으로 촬영한 사진들.


상민_ <예술과 사회>라는 잡지의 편집장을 맡고 계십니다. 당신의 세 가지 관심사가 이러한 사회참여와도 관계가 있을까요.

마르시알_ 네. 원자력발전소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은 특히 그렇습니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사진이야말로 인식적 경험과 지식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기에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미디어 철학자)와의 토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빌렘 플루서의 논의를 빌리자면 인간은 사진기를 가지고 그걸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있다는 걸 상기해야 합니다. 역으로 도구가 인간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원자력발전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요. 원자력발전소를 주제로 한 사진작업을 통해서는 보이는 형상 뒤에 숨어있는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칼로티프 방식을 이용해 현재의 원자력발전소가 완전히 과거의 모습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식입니다.


상민_ 칼로티프 방식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알기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마르시알_ 제가 주로 사용하는 사진기법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칼로티프는 현재하는 가장 멋진 사진을 가지고 50년 이후의 모습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적 방법을 일컫습니다. 세월을 덧입혀서 현재를 과거로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이 자체가 현재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에 대한 위협이지요. 이처럼 저의 작품들은 칼로티프 작업을 통해 시간을 압축해 보여줌으로써 현실이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민_ 인터넷에서 본 인물사진들이 모두 칼로티프로 작업한 사진들이었군요. 옛날 사진처럼 보이는 그 사진 속 인물들이 현재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인물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은 현재를 ‘영원’하도록 잡아두는데, 칼로티프 기법은 현재를 먼 과거의 모습으로 변화시켜버리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한꺼번에 제시하는 듯합니다. 사진의 역설이네요. 흥미롭습니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예술과 사회> 편집장이기도 하십니다. 예상컨대 사회에서 예술을 확장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걸 텐데요. 예술가로서의 책무라고 여기시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마르시알_ 저널은 사회 안에서 예술의 중요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담당합니다. 예술이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술이 어떻게 관계하는 지 규명하는 데에 기여하지요. 예술 자체는 동떨어져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술과 사회>는 예술가들의 역할과 중요성을 알리는 일을 합니다. 어떻게 예술이 사회에 기여하는 지 알리는 것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저널의 존재 자체가 예술이 사회에 속한다는 증거이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저널을 보고 이러한 생각에 관여하게 하도록 하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상민_ 마지막으로 질문 드립니다. 2016년에도 마산에서 작업한 경험이 있으셨습니다. 리좀의 전시프로젝트 <공상실록>이었는데요. 그때 당시와 비교한다면 이번 레지던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마르시알_ 당시는 레지던스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작품 전시에 참여자로 온 것이고요. 그때는 전시를 잘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면 이번 레지던스는 매우 즐겁게 작업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마르시알 베르디에 Martial Verdier

사진작가 – 비디오 작가 – 플라스틱 작가

파리근교 거주

www.vverdier-fr.com

- 인터넷 잡지 tk-21.com(www.tk-21.com) 편집장 겸 공동창시자

- 다타 메타 다타 부회장, 그룹 노방브르 공동설립자 겸 부회장

- ESAM 디자인, 사진학과 교수, 파리

- 사진학의 무아 오프 및 소나무/아르세날 전 부회장

- 1987 DNSEP 옵션 아트, 국립 세르기아트전문대학원


[주요 개인전]

2016 칼로티피엔/ FzKKE 독일

2014 외침은 라베라에서 형성되었다 / 파리 사진의 달, 갤러리 라빌라데자르

2013 우리는 아포칼립스의 영주들이다 / 마르세이유-프로방스 MP2013, 상트르 다르 플라스티끄 페르낭 레제, 포르-드-북 외 다수


[그룹 노방브르 주요 전시] / TK-21 (www.groupenovembre.com : www.tk-21.com)

2018 ... 재구성된 / 갤러리 라빌라데자르, 파리 (올리비에 뻬로와 같이)

2017 존재의 경계 / 갤러리 마미아 브르테셰, 파리

2016 OVNI 데크루와르 #1 / 갤러리 라빌라데자르, 프랑스 /한국 만남, 파리/서울 : O상실록, 팔레 드 서울 갤러리 및 쉼 박물관, 서울; 마산 리좀 시네마 및 갤러리 /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 제7회 광주국제아트페어, 아시아문화센터, 광주, 한국 / 하늘의 마법사들, 파리 등 다수


[레지던스]

러시아, 한국, 프랑스 등에서 다수 레지던스


[출판]

레 아프리카 / 출판사 오트르망, 파리

스크립션스 / 에디지오니 레 아리에 델 티엠포, 제노아, 이탈리아

사진작품의 안티카리안 아방가르드 / 구 과정에서의 새로운 파도, 릴르 렉세, 출판사 해리 N. 아브람스, 뉴욕 등 다수 저서 출판


[작품 소장]

파리 오디오비주엘 – MEP, 파리 / 한미박물관, 서울, 한국 / 박물관 다괴르, 브리 쉬르 마른느 / 페르낭 레제 미술센터, 뽀르 드 부크 등에 작품 소장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은 개울이 모여 큰 강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