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돌탑을 쌓는 남자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by 손서율


저녁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는데 방가산에서 돌탑을 쌓는 남자가 나왔다. 남자가 혼자 쌓아 올린 수많은 돌탑들은 문화유적지처럼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옛날에 내가 여기에 미쳤을 때는 달밤에도 쌓고 그랬는데 동네 사람들이 내보고 정신 나갔다고 그랬어. 달밤에 돌탑 쌓는다고" 남자는 돌탑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껄껄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야~ 팔자 좋네! 누군 먹고살기 바쁜데 누군 산에서 유유자적하며 돌 쌓는 게 취미라니.. 신선놀음이 이런 건가?" 나는 숟가락을 든 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돌탑이 즐비한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정갈하게 잘 지어놓은 남자의 집이 나왔는데 그는 뜨끈한 온돌이 깔린 겨울용 원두막에 장작불을 피우고 군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한껏 여유를 즐겼다.


속세를 떠나도 남부러울 것 없는 신선의 삶이었다.




제작진이 남자에게 산에 들어와 사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한 말투로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13년 전, 여기 올 당시에는 마지막 장소라 생각하고 올라왔어요 간에 당뇨에 폐도 그렇고.. 많이 안 좋았는데 몸이 이렇게 망가지고 나니까 기댈 곳은 자연밖에 없더라고.."


이어서 그에게 이렇게나 많은 돌탑을 쌓아 올리게 된 계기를 묻자 남자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큰 놈.. 큰아들이 8년 전에 내한테 와서 설날 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어"


산속에 있는 아버지에게 세배를 올리기 위해 찾아온 아들이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담아 수천 개의 돌탑을 쌓아 올린 거였다.


"좀 높게 쌓으면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워지겠지..."

이젠 눈물도 말라버렸는지 초연한 그의 표정이 더욱 슬퍼 보였다.


남자는 낡은 목탁의 속을 파내어 산새들의 집을 만들더니 자신의 집 처마 밑에 매달기 시작했다.


"근데요 아버님, 이렇게 새집을 만드시는 이유가 뭐예요?"


"직박구리 같은 새들은 습성상 아주 낮은 나무에다가 집을 지어요 그래서 산란기가 되면 알이 부화하기도 전에 뱀들이 다 잡아먹어 버려.. 나는 이제 새들 우는소리만 들어도 알아요 새끼를 잃어서 우는구나.. 먹이를 찾아서 우는구나.. 아주 슬프게 우는 새들은 부화도 못한 자식을 잃은 거예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한테 하소연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내가 집이라도 지어줘야 되겠구나 싶어서.."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이 새라고 다를까 싶어 아버지는 산새들의 집을 묵묵히 짓고 있었다.


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 조금이라도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달밤에 돌탑을 쌓고 또 쌓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주민들의 눈에는 그저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였고

내 눈에는 유유자적하며 취미로 돌을 쌓는 신선놀음처럼 보였다니..


이것이야말로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아닌가.




- 회사 점심시간 -


상사와 점심을 먹는 도중에 가정환경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서영씨는 화목한 집안에서 고생 안 하고 자랐지?"


"네 안 했죠"


나는 상사의 물음에 거짓으로 대답했다.

구태여 이 자리에서 나의 구구절절한 아픔들을 풀어내는 건 불필요했고. 귀찮았다.


"응 딱 봐도 곱게 자란 것 같더라"

상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멀찌감치 서 바라보는 그의 눈에 어쩌면 내 인생도 희극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저 재미로 쌓아 올린 돌탑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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