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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Nov 05. 2022

부디, 당신은 꼭 살아있기를

절대로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일요일 저녁,

여느 때처럼 집 앞 카페에 홀로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아 지루해"

오래전에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기지개를 켰더니 갑자기 하기 싫어졌다.


노트북을 닫고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서칭하다가 우연히 한 익명 게시판에 접속하게 되었는데 "거짓으로 살아남아야 해?" 라는 제목의 방금 게시한 글을 발견했다.


글을 클릭하니 바인더 끈을 여러 겹으로 둥글게 말아 거실 천장에 매달아 둔 사진과 함께 "정말 모르겠다"라는 정체불명의 글이 적혀있었는데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었다.


글 밑에는 실시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다.


"목매다는 거야?"

"뭐야 무섭게 ㅠㅠ"

"힘내.. 살아야지 그래도"

"니가 지금 하는 행동은 관심 구걸이야"

"제발 멈춰"

"무슨 일이야.. 힘내자 견딜 수 있어!"

"위로해 봤자 안 먹힐 거 안다"

"저분 신고해 주세요 연락처 알 수 있는 방법 없나요?"


글쓴이는 폭발적인 댓글들 속에서 아주 일부의 댓글에만 답변할 뿐이었다.


"목매다는 거야?"

"응 4시에 했다가 한번 실패했어"


"니가 지금 하는 행동은 관심 구걸이야"

"관심받아 뭐해 그냥 생각 중이야 더 살지 말지. 니들이 뭐라 하건 신경 안 써"


이런 날 선 말들 외에 따뜻한 위로의 말들은 이미 오래전에 진부해져 버린 건지 답변조차 하지 않는 그에게 나는 괴상한 댓글을 달았다.


"그러지 마, 자살하면 잡귀가 돼서 하늘로 못 올라가고 영원히 구천을 떠돈데"


나의 댓글에 발끈한 듯한 그가 대댓글을 달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유튜브에서 찾아봤는데 모든 무속인들이 다 똑같이 말하더라 자살하면 하늘로 못 올라가고 죽었던 장소에서 계속 떠돈다고, 후회하지 말고 제명에 다 살고 편안하게 하늘로 올라가자"


"아.. 제발.. 심리학이랑 양자역학 공부해 봐서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기도 한데.. 난 그냥 편해지고 싶을 뿐이야 의식이 없어지고 싶을 뿐"


"죽으면 끝이라는 건 착각이야, 자살하면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지금 있는 그 방에서 목을 매는 행동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까 신중하게 선택해, 막상 저지르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야"


"그건 그냥 의식의 상상이야 그쪽이 죽어보지도 않았는데 말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 나는 이승이 지옥이면 영혼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거든. 죽으면 그냥 의식 없는 잠처럼 코마 상태겠지"


그의 말대로 난 아직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지금 목을 매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나 또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대신 이런 해괴한 소리를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 절친했던 친구 Y가 자살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누군가 해머로 내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친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Y는 생전에 마치 암 투병을 하듯 자신을 끊임없이 옭아매는 우울증과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누구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병원도 꾸준히 다니고 약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지만 몇 년간의 투병생활을 뒤로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삶에 대한 의지박약, 관심 종자라고 비난하지만 내가 지켜본 Y의 우울증은 마치 끊임없이 증식하는 암세포와도 같았다.


Y가 죽고, 그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아, 인터넷에 "자살하면 가는 곳" "죽음" "사후세계"와 같은 키워드를 한동안 미친 듯이 검색했다.


죽음 너머의 세상을 알 수 없으니 Y가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걱정이 돼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나는 무신론자지만 사후세계에 대한 지표를 구하려면 무속인들과 종교인들의 주장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자살하면 가는 곳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여러 무속인들이 입을 맞춘 듯이 똑같은 이야기 했다. 원래 사람은 정해져 있는 명줄을 다 채워야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데 그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명부에서 이탈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영원히 자살했던 장소에서 머무르며 생전 마지막으로 했던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잡귀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불교적 관점에서의 자살도 불살생계를 어기는 행위이며 업보로 취급한다. 소름 돋게도 무속인들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을 띄는데, 자살을 하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자살할 당시의 행위를 수없이 반복한다고 한다. 자신이 죽은 자라는 걸 알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알아차려 윤회를 한다 해도 지옥으로 갈 확률이 크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자살도 명백한 죄로 취급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적용되며, 자살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하는 죄이기도 하다.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자살에 대한 죄악을 심판받게 되는 날이 온다고 주장한다.


어떠한 종교든 하나같이 공통된 의견은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Y는 어디로 갔을까?

정답을 찾기 위해 알아볼수록, 나는 더욱더 깊은 절망과 죄책감에 빠졌다.

그래서 앞으로 누군가가 또다시 자살을 시도한다면 반드시 막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친구는 자신의 룸메이트가 곧 자살할 것 같으니 나에게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의 룸메이트는 사석에서 겨우 두 번 본 사이일 뿐이었는데, 굳이 나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그녀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평행이론처럼 정말 흡사했다.


그녀도 나와 똑같은 스토리의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고, 새로운 가족들 틈에 섞이지 못해 아픔을 겪어온 인생이었다.


그녀의 인생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나였으니 마음은 무거웠지만 흔쾌히 응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수차례 만남을 요청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고 며칠 뒤 친구가 출근한 사이에 옷방에서 목을 매 기어이 자살했다.


결국 나는 두 번이나 자살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미 두 번의 실패를 겪어본 나는

바인더 끈을 천장에 매달아 놓은 채, 내 댓글에 대댓글을 달고 있는 그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알고 있다.


그는 남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숱하게 들어왔을 법한 진부한 위로를 듣고 싶어서도 아니다. 오류가 나버린 자신의 인생을 고치는 게 버거워져 전원 버튼을 꺼버리기 직전에, 잠시 양가감정이 들어 글을 올린 거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넘어서기만 하면 영원히 코마 상태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렇게 자살은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에 기댄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과 다르다. 인간은 심장이 멈춘다고 해서 고깃덩어리처럼 텅 빈 육체만 남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부터 조상들은 용이나 봉황 같은 상상의 동물을 영물이라 칭했지만, 사실 진짜 영물은 인간이다.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영물인지 망각하며 산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무실만 둘러보아도 노트북, TV, 핸드폰, 전화기, 각종 언어가 실린 신문, 아라비아 숫자들이 빼곡한 달력이 눈에 들어온다.


이 위대한 창조물들은 모두 인간의 뇌에서 태어났다. 이건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170만여 종의 지구 생명체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위대한 인간의 뇌 속에는 영혼이 머물고, 사후에도 영혼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이론도 있다.


2014년 3월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스튜어트 해머로프 교수는 “영혼은 뇌세포의 미소관(microtube)에 머문다”고 주장했다.


미소관은 튜블린이라 불리는 단백질로 구성된 매우 가느다란 관인데, 동식물의 세포 내에 존재하는 기관으로 그의 이론에 의하면, 사람의 뇌는 수많은 양자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컴퓨터"이며, 사람의 의식은 영혼에 기인한 "계산이 불가능한 양자 프로세스"에 기반한다고 한다.


해머로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죽음의 상황을 맞은 환자의 미소관은 양자 상태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미소관 내에 있는 양자정보는 파괴되지 않으며, 파괴될 수도 없습니다. 단지 그것은 우주로 분배될 뿐입니다."


해머로프 교수의 주장대로 우리의 뇌세포 속 미소관 내에 있는 양자정보는 생전의 기억을 담은 영혼이고,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면 그 기억들은 파괴되지 않은 온전한 형태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우주로 이동하는 게 아닐까? 그 원리가 종교계에서 말하는 사후세계일 수도 있겠다.




익명의 그는, 죽기 위해 만든 목줄마저 튼튼하게 못 만드는 자신이 한심하다며 댓글을 달았다.


눈앞을 가리운 절망에, 이미 시야가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있는 안타까운 상태였다.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도 잊은 채 말이다.


서열 싸움에 밀린 사자가 아무리 한심해도 여전히 사자이듯이, 자신이 한심하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는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양자정보를 지닌 엄청난 영물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면서 죽을 듯이 괴로운 일이 있어도 끝까지 버텨내야 하며, 절대로 자살해서는 안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물의 생명을 스스로 해한다면,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자살하면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지금 있는 그 방에서 목을 매는 행동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까 신중하게 선택해, 막상 저지르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야"


나의 해괴한 말에 익명의 그는 혼란스러워했다. 

죽음만이 편히 쉴 수 있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으니 유독 나의 댓글에만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안 그래도 궁지에 몰린 그에게 겁을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봐도 기어이 자살을 택했던 Y와 룸메이트를 보며


혹시 가장 안락한 길이라고 믿었던 자살에 대한 환상을 깨버렸다면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간절한 마음에 건넨 모진 말이었다.


"죽지 마 부탁할게 다시 마음잡고 살아줘. 나는 그쪽 얼굴도 모르는데 온 마음을 다 써서 걱정하고 있잖아"


나의 간절한 부탁에 그의 마지막 대댓글이 달렸다.


"정말 고맙고 미안한데 아직 모르겠어 새벽에 다시 생각해 볼게"




다음 날,

나는 어제의 게시글에 다시 접속해서 댓글을 달았다.


"괜찮아? 확인하러 왔어"


하지만 더 이상 아무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


그의 답변을 듣진 못했지만

우연히 들어갔던 게시글이 기적이 되었으면 한다.


이름도 모르는 당신

부디, 당신은 꼭 살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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