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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Dec 23. 2024

자갈더미 속 보석 같은 사람

소신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유  


2024년 12월 3일

국회 상공 위로 군용 헬기가 나타났고 완전무장한 계엄군들이 유리창을 부수고 국회 안으로 쳐들어오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자정에 가까운 야심한 시각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국회의원과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갔다. 국회의 모든 집기를 총동원해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리고, 총을 든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아내며 사투를 벌일 동안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켜 나라를 구했다.


하필 그날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초저녁부터 일찍 잠이 들었던 날이었는데. 내가 잠시 세상을 비운 9시간 사이에 대한민국은 아비규환이 되어있었다.




대통령 탄핵안 표결 당일

단체로 표결을 보이콧하고 국회 본회의장을 이탈한 여당 의원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호명되었고 그 장면은 모든 언론사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또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본회의장을 떠난 갑진 105적의 얼굴들을 표지 1면에 박제하여 공개 처형하였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105명은 내란에 동조하는 극악의 도적 때보다는 무리 속에 숨어 자신의 안위를 꾀하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 그 자체였다.


그들을 거세게 비난하던 대중도 막상 같은 입장이 되어 대의를 위해 평생 동안 일궈온 자신의 정치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놓인다면 양심을 저버리고 당론 뒤에 숨는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본성이니까.


그래서 나는 진부한 105명의 얼굴보다는 당론을 거스르고 표결에 참여한 단 3명.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의 얼굴을 더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수많은 자갈더미 속에서 자신의 색을 낼 줄 아는 보석 같은 사람들. 이들은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거스르는 희귀종이라 귀하다.


비록 본회의장을 이탈했다가 다시 되돌아와 투표를 하거나, 표결에 참여해도 차마 찬성표를 던지지 못하는 서투른 모습이었지만

중진세력의 강압적인 표 단속에도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다.




그럼 105명을 상대로 반대 입장에 선 단 3명.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도 자신이라는 존재의 근본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표결에 참여한 소신은 정말 단순했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나라의 중대한 표결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국회의원의 본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무리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살아가는 사람들은 호랑이와 같은 종자다. 척박한 설산에서도 홀로 생존이 가능한 호랑이는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른 일에 가담하는 하이에나들과는 확연히 다른 종자다. 종자가 달랐기 때문에 다수의 인간들과 반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신을 지키는 삶을 당신에게 선뜻 권할 수는 없겠다. 인생이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대중의 흐름에 인생을 맡기면 편하다. 치열하게 답을 찾을 시간에 옆 사람의 인생을 모방하면 얼마나 간편한가. 그릇된 선택도 다수의 의견이라면 책임이 분산되어 부담 없고,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지키며 사는 이들은 본인이 피곤하게 사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종지 그릇에 자신의 그릇이 포개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외로운 길을 택한다.


어찌 호랑이가 홀로 사냥하는 것이 과로하다 하여 하이에나 무리에 껴서 공존할 수 있겠는가?

호랑이라서 어쩔 수 없이 호랑이답게 사는 것이다.




소신을 지키는 삶은 피로하지만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 장점 몇 가지를 나열해 보면


1. 매 순간 소신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살면서 후회할 일이 없다.

2.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

3.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4. 나에게 주어진 소명에 확신이 생기고 더 이상 헷갈리지 않는다.

5. 결이 다른 사람들과 무리 짓지 않아도 혼자서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  

6.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닌, 의미가 깃든 삶을 창조한다.


그럼 흔들리지 않는 소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소신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번 생에 나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일까?"

"지구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소신은 오로지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구해야 한다.


소신이 없는 사람은 남들이 정한 수치가 모든 기준이 되어버린다.

남들이 좋다는 학군, 남들이 좋다는 아파트, 남들이 좋다는 브랜드. 그것들을 갖지 못한다면 불행한 삶이라고 여기며 불행하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쉽게 부패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사유하여 만든 '소신'이라는 뼈대가 없는 영혼은 이렇게 쉽게 일그러져 버린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죽은 자가 흙이 되어가는 동안, 새 생명은 물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우리도 별수 없이 거대한 생태계의 순환 속에 맞물려 가는 한시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죽어서 가죽만을 남기는 금수와는 다른 점이 있다.


인간은 소멸하지만 '정신'은 남는다.   

인간은 소멸하지만 '스토리'는 남는다.    

설사 모두에게 잊힌다 해도 내가 찍은 필름은 우주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는 철학과 의미가 깃들어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라는 존재의 근원인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구태여 외로운 길을 선택한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은 거센 내홍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다.


과연 그들은 지금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까?

장담컨대 모든 걸 잃는다 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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