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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Feb 14. 2024

일상의 우울을 맞이하는 방법

공식적으로 게으름 부리는 날  


pm 8:10

"와.. 8시? 미친 건가?"

해가 지고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켜고 중얼거렸다.


전날 저녁 7시에 잠들어서 다음날 저녁 8시까지 자다니.. 점심을 차려먹은 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자고 있었던 거다.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워 앉아보는데 공기가 엄청나게 무겁다. 목성에 있는 듯 두 배로 강력해진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도로 몸을 묻었다. 이렇게 우울에 잠식되어 버린 날은 온몸이 짓눌린 채로 옴짝달싹을 못한다.


나는 이런 상태를 비가 내린다고 표현한다.


비가 내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멘탈이 붕괴될 정도로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오는 비, 경미한 이유로 시작됐는데 도통 그칠 줄 모르는 비, 아무 이유도 없는데 뜬금없이 내리는 비


이럴 때 나는 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의 날씨를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오늘부터 장마 기간이라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공식적으로 게으름을 부릴 거다.


장마 기간은 내가 정한 공휴일이며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국가에서 정해준 공휴일에는 시간 아깝다고 아득바득 일하면서 내가 정한 공휴일에는 철저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건 살기 위한 게으름이니까.


비가 그칠 때까지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는다. 혈당이 걱정돼서 참고 있었던 초콜릿 케이크도 먹고 간이 걱정돼서 줄여가던 와인도 마음껏 마시며 얼굴이 퉁퉁 부어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때까지 잔다.


비가 빨리 그치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면 안 된다. 무거워진 마음이 응어리를 모두 털어낼 때까지 창밖에 내리는 비를 감상하듯 여유롭게 기다려야 한다.


우울한 마음은 폭우와 같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마구 퍼붓다가도 며칠 안 가 그치고 만다. 이렇게 날씨와 마음의 순리는 너무나 비슷해서 우울함을 날씨처럼 여기면 훨씬 여유롭게 마주할 수 있다.




3일째 되는 아침, 양껏 잠을 잤더니 에너지가 쌓였는지 슬슬 움직이고 싶어 진다. 몸을 일으켜보니 전날의 무거운 공기들이 사라져 있었다.


"비가 그쳤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곧장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자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던 우울의 잔재들이 더운물에 녹아내리며 하수구로 흘러들어 간다.


둔탁한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난 몸으로 밀려있었던 메일에 회신하고 본격적으로 외출 준비를 해본다.


‘찰칵’

현관문을 열자 기분 좋은 한기가 느껴진다.


비가 그쳤으니 잠시 멈춰두었던 삶을 다시 이어나가야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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