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관 생존기 (수필-3편)
살면서 처음으로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달 카드값으로 나가야 할 월급을 하루아침에 체불당하고. 나의 생계권을 쥐고 있던 회사 대표와 소송을 시작하면. 내 인생이 얼마나 약소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대표는 법무법인을 선임해 법률 대리인을 재판에 내보낼 동안, 본인은 인스타그램에 유럽여행 인증샷을 올리고 있는 반면. 나는 명품관 노가다로 벌어 온 일당을 KTX비와 택시비로 몰빵해 왕복 7시간을 들여 전라남도까지 내려가 재판에 직접 참석했다.
이렇게 자본적으로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이 소송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니,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긴축에 긴축을 감행해야만 했다.
가장 먼저 줄인 지출은 커피값이었다. 제일 저렴한 카페에서 1500원짜리 그란데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아침 점심으로 나누어 마셨고. 가끔 점장이나 손님들이 사 오는 카페라떼로 연명했다. 평소 좋아했던 스타벅스 티라미수 케이크 대신, 퍽퍽한 편의점 빵을 욱여넣으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몰골 유지비까지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소공녀 드레스 유니폼 덕분에 옷값은 들지 않았지만, 펌이 풀린 부스스한 머리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헤어숍은 가야 했고. 단골 피부과는 얼씬도 못했지만, 매일 바르는 스킨케어는 쓰던 제품에서 도저히 다운그레이드할 수 없었다.
재판 대응 서류를 쓰느라 밤을 꼴딱 새운 재판 날 아침에도 셔츠와 스커트를 꼼꼼하게 다리고, 드라이와 메이크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장신인 상대 여변호사와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겠다고 하이힐까지 챙겨 신었는데. 아무리 체력이 떨어지고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외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마음이 울적해 술이 고픈 날은 즐겨 마시던 와인 대신, 맥주 축에도 들 수 없는 500ml에 1700원짜리 싸구려 발포주를 마셨다. 와인을 허락하는 날은 오로지 승소한 날 뿐이었는데. 그렇게 기쁜 날마저 와인숍 구석에 모아놓은 1~2만 원대 와인들을 만지작거리며 비비노 평점을 검색하곤 했다. 어떻게든 맛있는 가성비 와인을 발굴해 보겠다는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이렇게 무자비한 긴축 속에서도 최대한 나의 존엄을 헤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곤 했는데. 가장 큰 과제는 식비를 절감하는 거였다.
명품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자마자 직원 복지부터 알아보는데 백화점 11층에 구내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시름 놓였다. 요즘 물가에 한 끼에 4000원짜리 구내식당이라니.. 점심 저녁을 모두 해결해도 8000원이면 공짜 밥과 다름없다.
그러나 구내식당을 다닌 지 나흘 만에 더 이상 먹지 못하겠다고 결론 내렸다. 흰쌀밥, 잔치국수, 전분 섞인 싸구려 소시지 조합은 탄수화물 폭탄 그 자체였고. 대부분의 식단이 단가에 재료를 맞추느라 영양학적으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나 또한 구내식당 짬밥으로는 10년이 훌쩍 넘는데. 영양사가 붙어 탄단지 밸런스를 관리하는 대기업 구내식당에 비해, 백화점 구내식당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안타까웠던 건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린 청년들도, 백화점 미화를 담당하는 어르신들도 매 끼니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거나 식당 안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때웠고. 매일 오후 4시에 백화점에서 무료로 지급하는 공장 빵을 간식으로 먹었다. 하루 동안 먹는 음식 중에 제대로 된 영양소를 갖춘 음식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구내식당에서 도시락을 펼쳐놓고 식사를 하고 있는 한 여직원을 보았다. 유니폼을 보니 1층 코스메틱 브랜드에서 근무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그녀는 도시락을 통을 차곡차곡 정리하고는, 가방에서 문제집과 태블릿 PC를 꺼내어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시간을 내어 도시락을 싸 온 것도 모자라, 짧은 점심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외로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평온한 일상들 사이에서 나만 치열한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름 모를 이의 어깨너머로 또 다른 치열한 하루를 엿보니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된 것이다.
나도 요리하는 걸 워낙 좋아해 도시락을 싸볼까도 생각했지만. 하루 11시간 육체노동과, 주 1회 쉬는 날마저 왕복 7시간을 들여 전라도로 재판을 다니던 상황이라 도무지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뒷정리를 할 수 있는 여분의 체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여건에도 불구하고 5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예쁘고 기능 좋은 도시락통을 샀다. 배보다 배꼽이 큰 지출이었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일수록 좋은 음식을 먹여 옥체를 보존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도시락 통이었다.
나는 곧장 인터넷으로 일주일 치 식재료를 장 봐서 이튿날부터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는데. 백화점에서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아홉 시 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지친 몸을 잠시 뉘었다가. 밤 11시가 넘은 심야시간이 되어서야 도마 앞에서 칼질을 시작했다.
평소 파스타를 자주 해 먹었는데 파스타는 도시락을 싸는데 적합한 메뉴가 아니었고. 바닥난 체력을 끌어올리기엔 영양소가 턱없이 부족했다. 대신 삼겹살을 노릇노릇하게 굽다가 삼겹살 기름에 오징어를 볶고, 빨간 양념장을 고루 부어 준 뒤, 마무리로 향신 채소들을 넣어 휘리릭 볶아주면 단백질과 타우린이 풍부한 매콤달달 오삼불고기 덮밥이 완성된다.
곁들일 반찬으로 갖은 야채를 다져 넣은 계란물을 프라이팬에 조금씩 부으면서 돌돌 말아낸다. 계란말이는 사각 팬이 없어도 예쁘게 만들 수 있는데, 약불 앞에서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여유만 있다면 망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 그새를 못 참고 뒤적거려 망하는 거다.
알록달록 예쁘게 부쳐진 계란말이를 한 김 식혀 단단해지면 도톰하게 썰어내고, 오삼불고기를 싸 먹을 초록 쌈 채소들도 깨끗이 씻어 따로 포장한다.
이렇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이틀 치 도시락이 해결되었는데. 부실한 재료를 보완하기 위해 미원으로 맛을 내는 사 먹는 밥과 달리, 신선한 재료를 가득 넣은 집밥이라 그런지 연달아 먹어도 전혀 물리지가 않았다.
그 밖에도 <고기와 야채를 담뿍 넣어 졸인 두부조림>, <구운 대파를 곁들인 소고기 볶음>, <닭 가슴살 야채 오므라이스>, <캐러멜라이징 양파와 소고기가 들어간 일본식 카레>, <삼색 나물 비빔밥> 같은 영양 가득한 메뉴 위주로 도시락을 쌌다.
탄단지 + 식이섬유의 완벽한 밸런스를 위해. 어떤 메뉴에도 초록 잎채소를 곁들이곤 했는데. 도시락 사진을 보던 친구가 집에 텃밭이 있냐고 물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건강한 식단에 진심이었나 보다.
도시락을 싸는 한 시간의 노고는 생각보다 큰 혜택을 주었다. 이른 아침, 백화점으로 출근하는 무거운 발걸음에 소풍 가는 것 같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내가 직접 싼 도시락이었지만, 다음날 점심시간에 열어보면 매일 황송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맛은 단연코 최고였다! 풍성한 재료들이 내는 감칠맛에 정성 가득한 손맛이 더해져, 사 먹는 밥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꽉 찬 맛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된 한 끼가 선사하는 든든한 밥심 덕분에 온종일 서있어야 하는 고된 명품관 근무를 버텨낼 수 있었다.
도시락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원이기도 했다.
‘좋은 날이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 오늘 하루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 맛있는 도시락 먹고 힘내보자!’
매일 도시락통을 열 때마다 응원의 메시지가 상기되며 마음이 평온해졌는데, 놀랍게도 나는 나에게 위로받고 있었다.
나의 삶의 궤적을 아는 주변인들은 이런 나를 보며 신기해하곤 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1인 가구로 살면서도, 고되고 척박한 인생을 버텨내면서도 그늘 하나 없이 밝다는 것이다.
"우울증에 안 걸린 게 되려 이상한 인생인데. 어떻게 그리 밝을 수 있어?"
이런 질문을 종종 받곤 했는데. 당시에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워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번 사건을 극복하면서 명쾌하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우울증에 잠식되지 않았던 이유는. 자아가 언제든지 두 개로 분리되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깥일로 지친 <가장>의 자아가 집으로 들어오면, 또 다른 자아가 <마누라>처럼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며 위로를 건넸는데.
이렇게 역할을 분담해 스스로를 살뜰하게 보살피니,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력한 내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지에서 18년이라는 기나긴 고통의 세월을 보낼 동안. 매일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머리를 단정히 빗었다고 하며.
가난해서 새 옷을 살 수 없었지만 정성스레 기워 입고, 붓과 벼루를 매일 닦으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켰다고 한다.
정약용의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스스로를 포기하거나, 더욱 스스로를 지키거나.
나는 후자를 택했다. 몸이 단정하면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면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나 또한 정약용처럼 스스로를 지키는데 더욱 몰두했다. 외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건강이 무너지지 않도록, 무자비한 긴축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나다움을 잃지 않도록.
덕분에 기나긴 어둠의 터널 구간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고,
고통의 시간은 성장의 마중물이 되었으며,
목표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하게 복수하는 데 성공했다.
살다 보면,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는 나를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보자.
나를 구원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내 안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