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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울릉도에서 7박 8일

by 손서율



"도대체 울릉도에서 혼자 7박 8일 동안 뭐해?"

다들 궁금해서 한 번씩 전화가 왔다.


2019년 5월 나는 혼자 배를 타고 울릉도로 떠났다. 울릉도는 비행기가 없어 오직 배로만 입도가 가능했다. 아침부터 사무실에 캐리어를 끌고 출근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쏜살같이 나와 강릉행 KTX에 몸을 실었다. 이미 어두워진 강릉 안목항에서 맥주 한 캔으로 마무리하고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울릉도행 배에 올랐다.


부르르르 배가 움직이면서 바닷속에서 방울들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내 마음도 덩달아 부르르르 설렌다. 항구 직원들이 나와 배를 향해 두 팔 힘껏 흔들며 배웅한다. 나도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울릉도를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온전한 자연 속에서 쉬고 싶었다. 제주도는 이미 핫플레이스로 가득 메운 휴양지였고 핫플레이스는 없지만, 때 묻지 않은 섬마을에서 일주일 동안 모두 내려놓고 그저 쉬고 싶었다.


나는 대부분의 여행을 장박으로 잡고 혼자 간다. 혼자 가는 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실 욕심쟁이라서 그렇다. 여행 메이트가 생기면 일정의 절반을 양보해야 한다. 혼자 가는 여행은 오롯이 그날 하루 나의 컨디션과 기분으로 모든 일정이 짜인다.




탑승객의 대부분은 등산복을 풀착장 하신 어머님 아버님들이었다. 울릉도는 산악인의 성지이기 때문에 등산이 목적이 아닌 사람은 거의 오지 않는다. 여행하며 놀라웠던 점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등산복도 입지 않은 젊은 여자가 책을 들고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서 출몰하니 그 좁은 섬에서 어지간히 튀었나 보다.


울릉도에서 이틀 정도 지내보니 나름 그곳에서의 생활 패턴이 정해졌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해안선을 따라 아침 산책을 한다. 울릉도는 시시각각 시간에 따라 물의 색깔, 숲의 색깔이 다른데 아침이 유독 물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아침 산책으로 힐링하고 숙소로 돌아와 간단한 조식을 먹고 에코백에 책을 두 권씩 넣어 최대한 가볍게 챙긴다. 관광지는 하루에 한 군데 많으면 두 군데밖에 가지 않는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있으면 모두 갈 수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산에 오른다. 울릉도는 작은 섬이기 때문에 산에 오르면 사방에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다.


좀 쉬고 싶은 날엔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멋진 테라스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버님 어머님들이 모두 등산 가신 동안 나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

울릉도의 맑은 바다
울릉도에서 산에 오르면 보이는 전망
어머님 아버님들 등산하실 때 독차지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




바다가 잔잔한 날에는 무조건 독도에 가야 한다. 독도는 풍랑에 따라 접안이 결정되는데 풍랑이 거센 날에는 독도까지 배를 타고 가도 접안이 불가능해 내릴 수 없다. 난 운이 좋게 접안에 성공하여 독도에 내려 태극기도 흔들고 잘생긴 해양 경찰분들에게 소정의 간식도 드리고 왔다.


점심시간이 되면 울릉도 로컬 맛집에 간다. 혼자 다녀도 밥 먹는데 문제없다. 앉을자리가 없으면 재료 손질하는 테이블을 치워서 자리를 만들어 주고 메뉴판에 1인분이 없어도 반값만 받고 상을 차려준다. 척박한 땅을 일구고 살아낸 현지인 분들이라 그런지 매사에 안 되는 게 없다. 너무너무 내 스타일의 문화다.


명이나물 밭 한가운데서 산채나물 비빔밥을 먹는데 나물 향이 너무 향긋해서 고추장을 넣지 않았다. 고슬고슬한 쌀밥에 각종 나물을 넣고 참기름만 둘러도 눈물 나는 맛이다.


울릉도 특산물인 홍합밥에 따개비 칼국수도 별미였고 물회 맛집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맛이라서 다음날 또 찾아갔더니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 맛있었냐며 아주 귀여워해 주셨다.


접안에 성공해서 운 좋게 독도에 입도하였다.
두 번이나 방문했던 기가 막히는 맛의 물회 집




저녁이 되면 항상 맛있는 안주를 곁들여 1일 2 호박막걸리를 마셨다. 울릉도 호박 막걸리는 끝에 살짝 맴도는 달달한 맛이 절대 한 병으로 끝낼 수 없다. 안주는 오징어회가 특히 끝내줬는데 너무 달아서 사장님께 설탕 뿌린 거냐고 여쭤볼 정도였다.


어느 날은 독도 새우를 먹으러 갔는데 살아있는 새우가 너무 징그러워 손도 못 대고 벌벌 떨고 있었더니 서빙하고 있던 어린 여자 직원이 오더니 직접 다 까서 소녀 감성으로 하트 모양 새우를 만들어 접시에 담아 주었다. 가게 사장님의 조카였는데 육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가게가 잘되어 섬으로 돌아와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시키지도 않은 해물탕을 끓여 자리에 올려놓더니 소주 한 병을 가져와 합석해도 되냐고 물었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친구였지만 그 당돌함이 너무 귀여워 그날 마감 시간까지 그녀와 함께 소주를 기울였다.


생긴 건 너무 무섭지만 맛은 일품인 독도 새우
호박 막걸리와 파전의 조합은 최고




울릉도는 경치보다 사람이 더 생각나는 여행지였다.


해안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지나가던 차들이 서서 행선지를 물어본다. 처음엔 나쁜 의도로 의심하고 묻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일주일간 지내보니 일상적인 일이었다. 남자, 여자, 가족단위가 탄 차들이 옆에 와 행선지를 물어보고 같은 길이면 태워주려 한다. 워낙 지형이 거칠고 걷기 힘든 거리라 일반적인 선의이다.


어떤 날엔 버스정류장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차를 세우시더니 버스 배차시간이 많이 남았으면 태워주신다 하셨다. 다행히 가는 방향이 같았고 조수석에 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드라이브를 했다. 길에서 처음 만난 분이었지만 마치 딸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버스도 신기했다. 서울에서는 버스를 탈 때 정거장에서 정확히 승차하고 하차해야 하지만 울릉도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손을 흔들도 버스가 와서 태워준다. 내릴 때도 정류장이 아닌 중간 지점에서 기사님께 말씀드리면 최대한 목적지에 가깝게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해서 세워주신다.


울릉도에서 산책하면 흔하게 보는 경치
배에서 보는 울릉도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그곳에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땅이 척박한 만큼 이웃끼리 서로서로 돕고 정이 많았다. 가끔 전화 오는 지인들의 걱정과 다르게 7박 8일 동안 낯선 섬에서 홀로 지내면서 결코 외롭지 않았다.


몸살에 걸려 몸 져 누워 있을 때 약을 구해와 건네주시고 다음날 아침에도 찾아오셔서 걱정해 주신 숙소 주인아주머니


"아가씨 밥은 먹고 다녀요?" 물으시며 바쁜 시간에 자리도 없는데 1인석을 만들어 앉혀 주시던 식당 아주머니


길을 모르고 헤 멜 때 운전석 뒷자리에 앉히고 가는 내내 울릉도 배차 시스템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주신 버스 기사님


"수요일 도동항에 계셨지요?", "금요일에 독도에서 보았어요" 나를 알아보시고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아버님 어머님들


비록 혼자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지만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했던 섬마을에서의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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