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방법으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꿈을 꾸길 강요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

by 손서율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이고 아침 준비를 해요"


아프간 분쟁지역에서 취재를 하던 김영미 PD가 명예살인이 결정되어 집안 남자들에 의해 곧 목숨을 잃게 될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을 인터뷰하며 일생 동안 그려왔던 꿈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아니! 미래! 꿈! 드림!"


김영미 PD는 그들에게 여러 차례 되물었지만 그저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이고 아침을 준비한다는 반복된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PD는 답답한 마음에 통역사에게 다그쳤다.


"대체 왜 통역이 안 되는 거예요?"


통역사는 대답했다.


"이 사람들이 꿈이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요.. 미래라는 말을 어떻게 알겠어요"


자식과 남편의 손에 죽음을 맞아야 하는 그녀들의 죄목은 고작 길에서 다 죽어가는 탈레반 병사가 가여워 집으로 데려와 밥 한 끼 먹였다는 이유였다.


꿈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땅에서 나고 자란 그녀들에게 "꿈"과 "미래"라는 말은 내일 해야 할 일과로 해석될 뿐이었다.




김영미 PD의 인터뷰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녀들과 나는 지구라는 같은 별, 같은 시대에 공존하고 있지만 서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단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그녀들의 눈에는 꿈을 꾸길 강요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민하는 나의 삶이 마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에 빠진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한때 가장 싫어했던 질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어른들은 꿈부터 물어왔다. 이제 막 인생이라는 거대한 산의 초입에 들어섰을 뿐인데 다짜고짜 어떤 봉우리에 오를 건지 묻는 것과 같았다. 당장 500미터만 올라가도 어떤 길이 펼쳐질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정상만을 이야기하며 비장함을 강요하니 나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뜬구름같이 손에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10대 시절 내가 글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고, 20대 초반에 내가 글을 쓰는 행위를 즐거워한다는 걸 확신하게 되면서 잡지사 에디터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잡지사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했지만 회사에서는 터무니없는 액수의 페이를 주며 툭하면 야근과 주말 근무를 요구했다. 이런 부당한 대우 앞에는 모두 "열정"이 붙었다.


비장함이 뭐 그리 좋은 거라고 다들 외쳐대는 건지.. 글을 사랑했던 나도 진절머리가 나서 결국 줄행랑을 쳤다. 그동안 내가 꿈에 닿을 수 없게 막아왔던 장애물은 그놈의 비장함과 어거지 열정이었다는 사실을 청년의 끝자락까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에겐 정상만을 우러러보며 비장하게 오르는 산행이 맞지 않았다. 500미터씩 오를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들을 충분히 감상하며 산행 중 우연히 발견한 계곡에 발을 담가도 보고, 마음에 드는 평지를 만나면 그날 하루는 등산을 멈추고 캠핑을 즐기기도 하면서 산에 오르는 과정 자체를 즐겨야 꿈이라는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열정의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올해 초 나는 작가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고 그동안 실패해온 산행과 전혀 다른 방법의 산행을 하고 있다. 최대한 힘을 빼고 비장함을 내려놓은 채 단지 산에 오르는 과정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초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글감이 바닥날까 봐 걱정되어 갑자기 떠오르는 주제가 있으면 메모장에 미리 적어놓고 나열된 순서대로 글을 써보려 했으나 메모장은 결국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날그날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로 글을 쓰는 게 글의 퀄리티가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이 내키는 대로 즐기면서 써야 결과물이 더 잘 나왔다.


앞으로는 여기서 얼마나 더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는지, 지금은 가늠할 수도 없는 정상을 최종 목표로 삼기보다는 꿈의 주기를 1년 단위로 정하고 갱신해 가면서 당장 내가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꿈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1년 후 꿈꿔온 지점까지 도착하면 직접 그곳까지 가봐야 볼 수 있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나게 될 거고 그 이정표를 토대로 앞으로 새롭게 이루고 싶어진 1년간의 꿈을 다시 계획한다면 정상에 오르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하지 않을까?


꿈은 최대한 원대하고 비장하게 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한 가벼운 취미처럼 시작해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일생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강렬한 열정이 생겼다. 그건 먹고살기 위해 어거지로 짜낸 가짜 열정이 아닌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열정이었다.


김영미 PD의 인터뷰를 보고 난 후, 명함 크기의 작은 카드에 오늘로부터 일 년 뒤의 날짜와 일 년 안으로 꼭 이루고 싶은 세 가지 꿈을 정성스레 적어 카드지갑 가장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일 년 뒤인 2022년 9월 14일, 지정해 놓은 알림이 울려 카드를 꺼내어보니 그곳에 적혀있는 건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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