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베푼 것들을 잊어버리는 안 좋은 기억력
"이 선임님 어디 갔어요? 아 여기 있었네~ 헉 생일 파티 중이네요? 어쩌지.. 우리도 지금 파티 준비해 놨는데"
생일날 출근했더니 내 생일 파티가 두 군데 회의실에서 동시에 열렸다. 한쪽 회의실에서는 친한 여직원들이 반대편 회의실에서는 우리 팀 사람들이 동시에 두 개의 케이크에 초를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운데에서 어딜 먼저 가야 하나 정말 난감했지만 이 상황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내가 회사를 퇴사하던 금요일, 나의 송별회를 하게 되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린아이를 시댁에 어렵게 맡기고 참석한 사람, 오래전에 잡혀 있었던 모임을 취소하고 온 사람 등 각각의 사정들이 있었지만 팀원 전원이 금요일 밤을 반납하고 송별회에 참석했고 타 팀 사람들도 자진 참석하여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보통 퇴사하거나 해외 주재원을 나갈 때 마지막 송별회를 여는데 참석하는 인원에 따라 그 사람의 평판을 알 수 있다. (마치 그동안 쌓아왔던 인맥의 성적표 같다.)
우리 팀에 평소 평판이 좋지 않았던 책임님의 송별회는 평일 저녁인데도 3명이 겨우 모였다. 다들 가기 싫은 자리라서 서로 눈치 게임을 하다가 총대를 멘 사람들이 마지못해 나간 자리였다. 이해관계가 사라진 사이는 이렇게 냉정하다.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금요일 저녁을 반납하고 나를 위해 모인 자리라니.. 이미 마음 벅찬 감동이었는데 그들은 사비를 걷어서 모은 60만 원어치 상품권과, 꽃다발, 개인적으로 준비한 각각의 선물들, 내 사진을 직접 출력해서 만든 귀여운 졸업장, 한 자 한 자 수기로 써 내려간 정성이 모인 롤링페이퍼를 건넸고 결국 양손에 다 들 수 없어서 포장지는 뜯어서 버리고 쇼핑백 두 개에 가득 담아서 챙겨 왔다.
팀에서 가장 깐깐하기로 소문났던 여자 책임님은 건배사를 하면서 너무 서운하시다며 눈물을 보였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와서 '이 선임의 프리허그 타임'도 가졌다. 다들 있는 힘껏 꼭 끌어안아 주셨다.
4년을 몸담았던 조직이라 수도 없이 많은 송별회에 참석해 보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송별회 풍경이었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었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나중에서야 문득 깨닫게 되었는데 나 또한 그들에게 진심을 담은 호의를 베풀어왔다. 그동안 내가 그들에게 베풀었던 것들은 모두 잊어버려서 기억이 없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한꺼번에 되돌려 받은 거였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작은 선물을 해주어도 해준만큼 되돌려 받아야겠다는 계산 자체가 없기 때문에 금방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고 나서 내가 축하받을 일이 생기면 그들은 보통 1.5배에서 많으면 수십 배로 되돌려줬다. 나는 내가 베풀었던 호의를 이미 까먹은 상태기 때문에 마치 처음 받은 호의처럼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온다.
"언니는 진짜 선물 복이 타고난 것 같아요" 회사 동생이 감탄하며 이야기했다. 그 말대로 나는 남들보다 선물 복이 남달랐다.
내 직속 상사가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게 되셨을 때 100만 원 상당의 캐리어를 선물해 주셨다. 그 외에도 다른 분들에게 1박에 50만 원이 넘는 5성급 호텔 숙박권을 3번이나 받았고 여자든 남자든 해외 출장자들에게 명품 화장품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아서 친구들에게 나눔 했다.
그 외에도 값비싼 브랜드의 마카롱이나 수제 초콜릿 등의 먼 곳에서 가져온 귀한 선물들을 매달 받아왔다.
그건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바쁜 일정을 쪼개 매장에 들려 픽업 후에 캐리어에 넣어서 한국까지 가져오는 번거로운 과정들을 상상하면 엄청난 감동이다. 감사함을 잊지 않고 두고두고 기억하니까 그게 예뻐 보여서 더 많이 챙겨주신 것 같다.
그렇게 선물복이 넘치게 살았지만 무심하게 건네는 홍삼즙 한포에 아직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감동의 심쿵은 도무지 무뎌지지 않는다.
베푼 것들은 기억 상실하고 받은 것들만 또렷이 기억하니 인생이 매번 서프라이즈고 감사한 일들로 가득했다.
반면에 베푼 만큼 돌려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체 왜 그런지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그 사람이 베푼 호의 속에는 목적이 있었다.
부탁을 하기 전에 미리 밑밥을 깔기 위해서
물질적인 것들로 어필하여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일을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계(?) 같은 다양한 목적이 숨어있는 호의들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베푼 호의이기 때문에 주고받은 거에 대해서 끊임없이 계산하게 되고 그 얄팍한 속내를 상대방이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호의를 베풀어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내가 베푸는 호의는 정말 그 사람이 좋아서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물론 내가 베푼 호의를 상대방에게 돌려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또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상대방에게 진심을 담은 호의를 다시 건네니 결국 마음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건넨 호의에서 적으면 1.5배 많으면 수십 배 커진 호의로 다시 되돌려준다.
"내가 남한테 베푼 것들을 잊고 살다 보면 서프라이즈 선물이 넘쳐나고 감동으로 가득 찬 인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