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도 편견어린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2014년, 제법 추운 겨울이었다.
퇴근길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바삐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어머 누구세요?"
"에벱에ㅔ베베 에헤 으흐 으베에"
얼굴이 한껏 일그러진 채 온몸을 배배 꼬는 한 남자였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소리로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달라며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자폐증을 앓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으에헥에 에베에헤으윽 에베에ㅔ"
"네? 뭐라고요?? 죄송한데 무슨 말씀이신지 못 알아듣겠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에헥에 으에게엑 에베에에엑!!"
"아 돈이 필요하신 거예요? 죄송해요.. 저도 드리고 싶은데 제가 지금 현금이 하나도 없어요"
"에에ㄹ레게 으헤에엑 으야르 아ㄹ레에"
"정말 천 원짜리 한 장도 없어요 죄송합니다.. 신용카드밖에 없어요"
그는 내 말을 듣곤 정말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치며 다시 이야기했다.
"에에레 ㅈ버노에엑"
"네? 번호요?"
"에엑!! 버노으에!!"
"혹시.. 전화번호요..?"
"으ㅈ베에 에베ㅔ에!!" (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격한 몸짓과 알 수 없는 괴상한 언어로 이야기하던 그의 입에서 겨우겨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 단어가 나왔는데 그건 "번호"라는 단어였다.
지금 그는 나에게 번호를 따려고 하고 있던 것이다.
한참 카드 지갑을 꺼내 열어 보이며 현금이 없어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의 저의를 알자 기가 막혔다.
나의 팔을 간절히 붙잡고 있는 그를 뿌리치며 이야기했다.
"아니요! 번호는 곤란할 것 같네요"
차가운 한마디를 내뱉고 휙 돌아서서 걸어가는데 기분이 너무 언짢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내가 만만한 건가? 성희롱인 건가? 장애인 눈에도 내가 만만해 보이나? 신종 사기인 건가? 오만가지 생각으로 혼란스러워져 집에 가는 내내 머리가 아팠다.
며칠 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음.. 그냥 그 사람 눈에는 그때 네가 정말 예뻐 보여서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서 말을 건 게 아닐까? 본인이 심한 자폐증을 앓고 살아왔다면 그동안 사람들에게 받아온 대접들을 뻔히 알 텐데.. 그걸 알면서도 너에게 번호를 물어봤다는 건 같은 남자가 봐도 대단한 용기 같은데?"
친구의 말을 들으니 편협한 나의 시야가 부끄러워졌다. 그는 단지 평범한 남자들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번호를 물어봤을 뿐인데 몸이 많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는 성희롱, 신종 사기를 의심하며 얼굴을 붉혔다.
만약 친구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때 그 남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머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지나가는 길에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네? 뭐라고요?? 죄송한데 무슨 말씀이신지 못 알아듣겠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전화번호를 여쭤보고 싶어요")
"아 돈이 필요하신 거예요? 죄송해요.. 저도 드리고 싶은데 제가 지금 현금이 하나도 없어요"
("돈이라니요.. 그럴 리가요 비록 제가 몸은 많이 불편하지만 살면서 가장 큰 용기를 내서 번호를 여쭤봅니다.. 돈은 필요 없어요")
"정말 천 원짜리 한 장도 없어요 죄송합니다.. 신용카드밖에 없어요"
("아니요 정말 돈이 아니라요.. 전화번호를 주세요")
"네? 번호요?"
("네!! 맞아요! 번호를 주세요 꼭 연락드리고 싶어요")
"혹시.. 전화번호요..?"
("네 맞아요! 전화번호요!!")
"아니요! 번호는 곤란할 것 같네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내 손을 뿌리치더니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차라리 돈을 달라고 말했더라면 그렇게 차가운 표정을 보진 않았겠지..
이젠 더 이상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