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임신 일곱 달이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어머님이 감잎차를 사 오라고 하셨다. 원래 변비가 심하신 어머님은 감잎차를 하루 두 잔은 드셔야만 속이 편하셨다. 그날도 어김없이 “시장에서 감잎차 좀 사 와라” 하셨는데, 솔직히 불러온 배를 안고 시장까지 걸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한동안 혼자만의 외출이 어려워질 테니, 지금이라도 잠시라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래, 오늘은 숨 좀 쉬고 오자.’ 그런 단순한 이유로 나는 기꺼이 신발을 신었다.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큰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매달렸다. “엄마, 나도 데려가!” 사실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움직이는 건 만만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아이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어 나는 결국 작은 손을 잡아주며 함께 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햇볕은 이미 한낮을 넘어선 듯했고, 불러온 배는 걸음마다 더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딸은 내 손을 꼭 잡고 이리저리 구경하며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 하나 덕에 더운 길도 조금은 견딜 만했다.
춘천명동시장 끝자락, 어머님이 말씀하신 가게에 도착해 감잎차 한 봉지를 달라 하니 7천 원이란다. 봉지를 들고 나오는 길에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니, “그럼 하나 더 사 와.” 하는 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 같은 차를 집어 들고 돈을 내밀자, 아주머니는 뜻밖의 말을 했다. “9천 원이에요.” 아까 분명히 7천 원이라고 했는데, 한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가격이 달라졌다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는 7천 원이라고 하셨잖아요?” 말하자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원래 9천 원이에요.”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시장 한복판에서 한 손으로 배를 받치고, 다른 한 손에는 봉지를 든 채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평소의 나라면 그냥 넘겼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그날의 나는 달랐다. 더위에 지쳐 있었고, 임신한 몸은 무겁고, 억울함까지 겹치자 참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튀어 올라왔다.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결국 삿대질까지 하게 되었다. 임신 7개월 차, 땀을 뻘뻘 흘리는 임산부가 시장 한복판에서 찻값을 두고 대치 중이니 누구라도 놀라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결국 다시 7천 원에 차를 사 들고 나오긴 했지만, 그 사이 딸아이는 지쳐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 나 업어줘…” 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 싸움이 얼마나 소모적이었는지 깨달았다. 배는 이미 만삭처럼 불러 있었고, 몸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지만 나는 딸을 업고 느린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땀은 등에 줄줄 흘렀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해졌다.
‘그래, 나 생각보다 쎄구나. 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견디고 있네.’
돌아보면 그날 시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작은 싸움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았다. 단순히 억울함 때문에 목소리를 높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었다. 임신한 몸으로도 아이를 보호하고,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그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여성으로 산다는 건 이렇게 크고 작은 싸움들을 수없이 겪어내는 일인지 모른다.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그리고 결국엔 나 자신을 위해.
그날의 나는 그저 차값에 화가 난 임신부가 아니라, 인생 앞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려 용기 내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이후의 나를 이끌어 준 아주 작은 씨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