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16] 돌봄의 하루, 서로 다른 방식의 평화
어머님이 오늘 우리 병원에서 암 진단 후 매년 추적검사를 받으셨다. 노란 환자복을 단정히 여미고 의자에 앉아 계신 모습은 담담해 보였지만, 그 표정 깊은 곳에는 오래된 긴장과 세월의 흔적이 고요하게 스며 있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님의 손등에 아주 작은 떨림이 머물렀는데, 그 미세한 움직임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두려움과 용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검사가 끝난 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따끈한 국물로 속을 달랬다. 수증기가 얼굴을 감싸자 어머님 얼굴빛도 조금씩 돌아왔고,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안도감을 느꼈다. 병원의 공기 속에 꽉 차 있던 긴장감이 국물 한 모금에 녹아 사라지는 듯했다. 오후에는 네일숍에 들러 손톱을 곱게 정리했다. 어머님은 정돈된 손끝을 바라보며 “괜찮네” 하고 미소 지었는데, 그 작은 웃음이 오늘 하루의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남았다. 병원을 지나온 마음에 이런 사소한 꾸밈이 작은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옆에서 도서관에서 빌린 『Wild』를 펼쳐 들었다. 길 위에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한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오늘 하루 나와 어머님이 걸어온 시간도 조용히 정리되는 것만 같았다. 검사와 점심과 네일, 얼핏 분주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호흡과 회복이 있었다.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시간이었지만, 어머님은 오래 살아낸 사람만의 단단함으로 하루를 통과했고 나는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곁을 지켰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화를 건네고 받던 시간. 그래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잔잔하고 깊은 하루였다.
#책강대학 # 백일백장 26기#책과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