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부부 사용설명서 : 갱년기 편

[100-024] 예민한 나와 조심스러운 당신이 함께 버티는 법

by 손샤인

갱년기를 지나며 깨닫는다. 우리는 둘 다 예민해지고, 둘 다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을. 감정이 금방 흔들리는 나와, 그 감정을 다치지 않게 건드리려 애쓰는 당신이

같은 집 안에서 각자의 파도를 견디며 하루를 버틴다.

이 시기는 누가 더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지나가느냐가 중요한 시기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서로의 온도를 살피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갱년기는 남편에게도 처음 마주하는 풍경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말투는 조금 날카로워졌고, 감정은 바람처럼 예고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가볍게 듣고 웃어넘기던 말도 요즘은 괜히 트집처럼 들리고, 사소한 일에도 금세 눈물이 차오르거나 한숨이 길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남편은 이 변화의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몸이 변해서인지, 마음이 지쳐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판단할 수 없어 조심스러워진다. 말끝을 누르고, 칭찬 한마디도 타이밍을 재게 되며, 때로는 침묵이 싸움을 피하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남편이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갱년기는 아내의 탓이 아니라 아내의 ‘상태’라는 것.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동시에 흔들리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점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니라 공감이고, 논리가 아니라 온기다. “왜 그래?”보다 “힘들지?”가 마음을 살리고, 감정의 파도는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 관계를 지킨다. 커피 한 잔 내려놓는 작은 배려, 쓰레기 조용히 버려두는 손길, 무심한 듯 꺼내 둔 운동화 한 켤레 같은 사소한 행동이 아내에게는 안전함이 된다.


남편은 예전처럼 과하게 다정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아내가 예민할수록 밝은 톤은 오히려 더 벅찰 수 있다. 필요한 건 과장된 다정함이 아니라 조용한 존재감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 한마디는 아내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죄책감을 풀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갱년기는 아내만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남편도 같은 세월 위를 걷고 있다. 함께 변하고,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느낌이 서로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아내의 갱년기를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관계를 지켜주는 말은 딱 하나다. “나는 네 편이야.”갱년기는 언젠가 지나갈 시기이지만, 이 시기를 어떻게 함께 견디느냐는 우리 둘의 관계에 오래 남는 자국이 된다. 나는 더 예민해지고, 당신은 더 조심스러워지면서 우리는 서로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버티고 있다.

어떨 땐 그 간격이 멀게 느껴지고, 어떨 땐 말 한마디가 서로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 돌아보면, 우리는 항상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며, 조금 삐걱거려도 끝내 함께 걷겠다는 마음 하나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갱년기를 통과한 뒤의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다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기를 떠올릴 때 “그래도 잘 지나왔다, 당신이어서 가능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책과 강연#백일백장 26기#책강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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