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키즈온 더블록 노래가 유행하던 1992년, 난 전기대 시험에 떨어졌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한 편도 아니었기에 충격은 없었다. 오히려 군대에 가야겠다,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언니를 통해 일방적으로 원주간호전문대 원서를 넣어버렸다.
언니들과 부모님은 하나가 되어 ‘셋째 딸 간호학생 만들기’ 프로젝트를 밀어붙였고,
난 반항 한 번 못하고 간호대생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고등학교보다 더 엉망이었다.
이유도 없이 학교 가기가 싫었고, 출석률은 엉망.
어떤 학기는 출석 미달로 시험조차 못 볼 뻔했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꿈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졸업만 하자는 마음으로 다녔다.
연애도, 동아리도, 공부도 없었다.
롯데리아 알바만 꾸준히 하며 학교를 다녔다.
2학년 2학기부터 병원 실습이 시작됐다.
중앙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아산병원. 공부를 안 했으니 실습도 당연히 엉망이었다.
3학년 1학기, 전공 필수 3과목에서 F를 맞고 간호학과 ‘꼴찌’가 되었다.
유급 직전까지 가고 나니, 학교는 더 가기 싫어졌고 그만두고 싶기까지 했다.
그런 나에게 서울아산병원 실습은 충격이었다.
모든 게 달랐다. 병원 건물, 시스템, 사람들…
매일 그 병원 가는 게 즐거웠다.
지각 한 번 없이 실습을 나갔고, 그제야 간호학과를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습 마지막 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결심했다.
“내 꿈은 이제부터야. 아산병원 간호사가 꼭 될 거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성적이 최악이니 지도교수가 아예 원서도 써주지 않으려 했다.
“너 같은 성적으론 원서값이 아깝다.”
“작년에도 우리 학교에선 합격자 없었다.”
“우리 과 수석이 쓴다, 넌 안 된다.”
그때부터 난 매일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설득하고, 반성하고, 결의를 보이고…
안 되자 울며불며 매달렸다.
“기회를 주세요. 아산병원에 꼭 붙어서 학교 명예를 높이겠습니다.”
교수님은 결국 지치셨는지 원서를 써주셨고,
난 그날부터 벼락치기로 3년 치 공부를 시작했다.
두 달 동안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며 사발면과 빵으로 연명했다. 운동복 바람에 입술엔 피고름까지…
그제야 간호학과 공부가 무섭다는 걸 알았다.
내 눈엔 아산병원만 보였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열정이 생겼다는 게 감사했다.
간호학과를 싫어했던 이유는 사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전공서적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분위기, 그 속에서 난 공부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안 했던 건 ‘공부’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순간, 난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