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가 간호학과에서 꼴찌였다는 걸 전혀 모르셨다. 그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 취업하길 바라셨다.
하지만 난 처음으로 아빠의 뜻을 어기고, 몰래 서울아산병원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
시험 날.
원주에서 첫차를 타고 동서울로 향했다. 떨어질까 두려웠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시험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대학 입시 때보다도 진지하게, 그동안 공부한 걸 최대한 쏟아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긴장이 풀리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하지만 정말 너무 후회스러웠다. 대학 시절 공부하지 않은 지난날들이, 이렇게 크게 마음을 짓누를 줄이야.
집에 도착하니 엄만 내가 젤 좋아하는 팥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 집에서 내가 시험 본 걸 아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엄마는 내 편이었다.
2주 후, 합격 소식이 전해졌다.
엄마는 내가 붙을 줄 알았다며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이제 남은 건 면접!!
면접 전날, 엄마는 언니들 몰래 나를 데리고 시내에 나가셨다.
그리고 ‘엘칸토’에서 예쁜 메리제인 구두를 사주셨다.
(그 당시엔 최고였다!)
난 다음날 그 새 구두를 신고, 다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면접이 문제였다.
‘이 성적으로 물어보면 뭐라 대답하지…?’
면접관:
“이 성적표, 잘못된 거 아닌가요? 이 성적으로 어떻게 저희 병원에 지원하셨죠?”
나:
“네, 제 성적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병원의 수준을 떨어뜨리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사실, 대학 시절엔 간호사의 꿈을 단 한 번도 꾼 적이 없었기에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에서 마지막 실습을 하고 나서, 운명처럼 무조건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겁 없고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나의 진심을 보여주려면,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며칠 뒤, 합격 통보가 왔다.
기쁘고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선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백 썼다”, “돈 썼다”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나중엔 내 귀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 병원의 신규 간호사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서울아산병원! 딱 기다려!
이제부터 내 인생은 꽃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