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남자와 빠른 여자의 결혼 생활 (아내시점)

by 손샤인

나와 전혀 반대인 성격, 나와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그에게 빠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사람은 원래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으니까. 그때의 나는 ‘다름’이 곧 ‘보완’ 일 거라 믿었다. 그게 결혼의 미덕이라고, 세상 모든 부부 에세이에 쓰여 있던 문장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내 눈에 씌워진 콩깍지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아주 말끔하게 벗겨진다는 데 있었다. 처음엔 그의 느림이 좋아 보였다. 늘 분초 단위로 움직이던 내 삶에 ‘멈춤’이라는 개념을 알려주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멈춤이 아니라, 그냥 정말 느린 거였다.


나는 환자 앞에서 초 단위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살아온 사람이다. 바늘 하나, 약물 하나에도 시간이 생명인 세계에 살았다. 그런데 오빠는 말 하나를 꺼내는 데도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여백이 있었다. 질문을 던지면 나는 이미 답을 예측하고 대안을 세 개쯤 떠올린 뒤 다음 행동까지 계산을 끝냈는데, 그는 아직 “음…” 하고 있었다. 그 침묵의 시간 동안 나는 속으로 환자 차트를 한 장 더 쓸 수 있었고, 전화 한 통은 더 돌릴 수 있었으며, 심지어 하루를 반쯤 살아버렸다. 그의 느림은 어느 순간부터 평온이 아니라 경악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정말로 아꼈다. 아끼면 똥 된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온 나에게 오빠의 절약은 거의 신념의 영역이었다. 그는 허투루 쓰는 돈이 없었고, 헛되이 버리는 물건도 없었다. 유통기한은 그에게 경고가 아니라 ‘참고 사항’에 가까웠다. “아직 괜찮아.” 그의 이 한마디는 우유와 요구르트, 소스와 과자까지 시간을 초월하게 만들었다. 나는 날짜를 보고, 오빠는 냄새를 맡았다. 우리 부부의 식탁은 그렇게 과학과 경험의 대결장이 되었다.


부잣집 막내아들에 회계학과 출신. 그의 삶은 엑셀처럼 정갈했고 숫자처럼 명확했다. 나는 직관과 감으로 살고, 그는 계산과 근거로 산다. 나는 “일단 해보자” 쪽이고, 그는 “잠깐만, 따져보자” 쪽이다. 연애할 땐 그 꼼꼼함이 참 든든해 보였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건 거의 생활 속 내부 감사였다. 영수증은 기억 못 해도 통장 내역은 외웠고, 어제 산 건 잊어도 지난달 지출은 기억했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을까, 아니면 서로를 시험해 보라고 만난 걸까. 다른 게 매력이라 믿고 시작했는데,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간극이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래도 오늘도 우리는 그 간극 위에서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나는 조금 더 느려지는 연습을 하고, 오빠는 아주 가끔 유통기한을 믿어준다. 아마 이쯤이 우리가 합의한, 가장 현실적인 중간지점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아직도 다르다.

속도도, 돈을 대하는 태도도,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다름이 완전히 틀렸다고 느껴지는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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