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비디오 남자와 초 단위로 사는 아내 (남편시점)

나는 숫자를, 아내는 사람을 다뤘다. 그 차이가 결혼이 됐다.

by 손샤인

아내는 나와 전혀 달랐다. 성격도, 직업도, 삶의 속도도 그랬다. 그래서 처음부터 알았다. 이 사람에게 빠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걸. 사람은 원래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게 마련이니까. 아내는 늘 빠르다. 생각이 빠르고, 판단이 빠르고, 결정은 더 빠르다. 내가 질문을 정리하는 동안 아내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다음 단계로 가 있었다.


처음엔 그게 멋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분초를 아끼며 사는구나 싶었다. 환자 앞에서는 시간이 곧 생명이라는 세계에 사는 사람. 나는 숫자를 다뤘고, 아내는 사람을 다뤘다. 그 차이가 참 근사해 보였다. 문제는 그 근사함이 연애를 지나 일상으로 들어왔다는 데 있었다.


나는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 아내는 생각하면서 말한다. 아내가 질문을 던지면 나는 머릿속에서 자료를 불러오고, 정리하고, 가장 정확한 표현을 고르는 중인데 아내의 표정은 이미 “왜 아직도 거기 있어?” 쪽으로 가 있다. 아내는 종종 말한다. “지금 슬로비디오 보는 것 같아.”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억울해진다. 느린 게 아니라 꼼꼼한 건데.


나는 회계학과를 나왔고, 부잣집 막내아들로 자랐다. 아껴 쓰는 건 습관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었다. 허투루 돈을 쓰거나 물건을 버리는 일은 왠지 잘못된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유통기한도 나에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날짜보다 상태를 본다. 아내는 달력을 보고, 나는 냄새를 맡는다. 이건 취향의 차이다. 위생의 문제라기보다는.


아내는 말한다. “아끼면 똥 돼.”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똥 되기 전까진 괜찮지 않나’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한다. 연애할 땐 아내의 직관이 든든했고, 결혼하고 나니 그 직관은 가끔 나를 회의실에 앉혀 놓은 것처럼 만든다. 질문은 빠르고, 답변 시간은 없다.


그래도 나는 안다. 아내의 빠름은 성급함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걸. 사람을 살리는 자리에서 머뭇거릴 수 없었을 시간을 수없이 살아왔다는 걸. 아내는 내게 속도를 가르쳐주었고, 나는 아내에게 잠깐 멈추는 법을 가르쳐준다. 가르친다기보다는 버텨주는 쪽에 가깝지만.


우리는 여전히 다르다. 아내는 여전히 빠르고, 나는 여전히 아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차이 덕분에 집은 무너지지 않고 돌아간다. 아마 우리는 서로를 닮기보다는 서로의 속도를 조금씩 허용하며 같이 늙어갈 것이다. 그게 아내와 사는 방법이고, 내가 선택한 가장 확실한 결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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