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기일입니다.
이 글은 하루에 두 번, 같은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하나는 딸의 자리에서,
하나는 엄마의 자리에서.
같은 날 연재합니다. 같은 사건인데
시점이 다를 뿐입니다.
먼저 올라오는 글에서는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딸로 서 있고,
조금 뒤 올라오는 글에서는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편을 이어 읽다 보면
누군가는
‘아, 나도 저랬지’ 하고 딸의 마음에 멈출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엄마의 마음에
다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이야기인데 읽는 자리만 바뀌었을 뿐인데,
느껴지는 온도는 조금 다를 겁니다.
그 차이만큼 우리도 어쩌면 서로를 오해하며
살아왔겠지요.
이 연재는 누가 맞고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다른 자리에서 같은 사랑을 하고 있었는지를 조심스럽게 건네는 기록입니다.
하루에 두 번, 같은 이야기를 다른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당신의 자리도
조용히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내시점)
처음 간호사가 되어 서울아*병원에 취직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내가 집에 내려가 같이 시장에라도 가는 날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 자랑을 하셨다.
“우리 딸이 말이야, 서울아*병원 간호사야.”
그 말이 왜 그렇게 부담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괜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고,
괜히 내가 더 잘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말이 시작되면 고개를 숙였고,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땐 몰랐다. 엄마가 나를 자랑한 게 아니라
그 하루를, 그 삶을 , 겨우 버티고 있었다는 걸.
시간이 흘러 엄마 나이가 된 지금, 나는 딸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
괜히 자세히 말하고 싶어지고,
괜히 한 번 더 덧붙이고 싶어진다.
우리나라 최고의 작업치료사가 내 딸이라고.
그제야 문득 깨닫는다. 엄마도 그랬겠구나.
딸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조금 달래고,
조금 살아낼 힘을 얻고, 그 하루를 넘겼겠구나.
이해는 항상 늦게 온다.
자리를 바꿔 서야만 보이는 마음이 있다.
자식은 평생 짝사랑인가 보다.
그 사실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엄마시점)
처음 네가 간호사가 되어
서울아*병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너만 내려오면 괜히 시장에 갈 핑계를 만들었다.
사람 많은 데서 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우리 딸이 말이야…” 그 말을 꺼내는 순간마다
가슴이 조금씩 뜨거워졌다.
네가 얼마나 애써왔는지, 얼마나 참고 견뎠는지
나는 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너는 고개를 숙이고 괜히 창피해하며
자꾸만 발걸음을 재촉했지.
나는 그게 네 성격인 줄만 알았다.
그땐 몰랐다. 네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는 걸.
사실 나는 너를 자랑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 위로하고 있었다.
세상살이가 버거운 날이면 나는
네 이름을 불렀고,
네 직함을 빌려
하루를 견뎠다.
“그래도 나는 이런 딸을 키웠다.”
그 생각 하나로 다음 날을 살아낼 힘을 얻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너도 엄마가 되었구나.
이제는 네가 딸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반짝이는 걸
나는 안다.
그 눈빛을 나는 오래전에 이미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자식은 평생
짝사랑이다.
그 짝사랑 덕분에 엄만 정말 행복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