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생존기
― 간호사 은영, INFJ로 50대를 건너는 중
나는 간호사다.
그리고 INFJ다.
이 두 단어는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간호사로 오래 일하면서 나는 늘 사람의 말보다 먼저
숨소리와 눈빛을 배웠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
괜찮다며 이를 악무는 사람들,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병실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듣는 사람’이 되었다.
INFJ인 나는 원래도 말을 앞세우는 성격은 아니었다.
상황을 읽고, 마음을 헤아리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삼키는 쪽을 선택했다.
젊을 땐 그게 답답했다.
왜 나는 이렇게 말이 늦을까,
왜 내 생각은 항상 한 박자 뒤에 올까.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은 그 조용함이
내가 살아남은 방식이었다는 걸 안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어떤 말은 건네야 하고, 어떤 말은 남겨두어야 했다.
희망을 주되 거짓은 말하지 말아야 했고,
차갑지 않되 흔들려서도 안 됐다.
그래서 나는 점점 목소리를 키우는 대신
말의 온도를 재는 사람이 되었다.
50대 이후, 나는 더 조용해졌다.
그건 체력이 줄어서도, 의욕이 사라져서도 아니다.
이제는 안다. 모든 말이 관계를 살리는 건 아니라는 걸.
모든 진심이 지금, 여기서 꼭 꺼내져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INFJ로 산다는 건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욕심보다는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아프게 만드는 쪽을 택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크게 말하지 않지만
쉽게 지나치지도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확신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침묵을 견딜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젊을 때는 말하지 않으면 지는 것 같았고,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누구인지 안다.
나는 아직 완벽한 어른은 아니다.
여전히 말하고 나서 후회하고, 집에서는 가장 예쁜 말을 가장 늦게 꺼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말을 줄이는 대신
사람을 놓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INFJ로,
간호사로,
그리고 50대를 살아내는 은영으로.
조용해진다는 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 나는 덜 흔들리고,
덜 다치고,
덜 후회하는 쪽으로
조용히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