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선택에 대하여
오늘로 비건 11일 차다.
몸무게는 3킬로가 빠졌다.
숫자만 보면 꽤 큰 변화지만,
이 변화의 본질은 체중계 위가 아니라
몸 안쪽에서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기운은 살짝 줄어든 듯한데 대신 몸이 전보다 훨씬 가볍다. 묵직하게 달라붙어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떨어져 나간 느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슬그머니 빠져나간 무게 같다.
연휴 동안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메뉴판 앞에 앉아 예전보다 오래 머물렀지만
결국 오이와 당근, 두부부침, 반 모,
두유 두 개와 아메리카노로 하루를 무사히 건넜다.
과일은 귤과 딸기, 바나나 정도. 놀랍게도 아직까지
고기가 몹시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런 나 자신이 조금 낯설다.
몸은 가벼워졌지만 대신 배가 자주 아픈 느낌이 있다.
어쩌면 당근을 너무 많이 먹어서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직 몸이 새로운 방식에 적응 중인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식단을 다시 천천히 살펴보고, 영양제도 빼뜨리지 않고 챙기며 ‘무리하지 말자’는 문장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있다.
딸아이는 처음엔 엄마가 비건을 하는 게 불편하다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치킨과 닭갈비를
이제 같이 못 먹는 게 속상하다고.
그 말이 서운하기보다
이해가 먼저 왔다.
그래서 이 선택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굴 설득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엄마가 엄마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기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주말에도 가까운 지인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괜히 내가 불편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들은 나보다 나를 더 챙겨주었다.
이건 먹어도 되는지,
이건 괜찮은지
자연스럽게 물어보며
식탁 위에 나를 위한 자리를 남겨주었다.
그 마음 앞에서 괜히 미안해졌고,
그래서 더 고마워졌다.
한 사람의 선택이
이렇게 다정한 배려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마음에 남았다.
아직까지는 힘들지 않다.
조금 허기지고,
가끔 배가 아프고,
대신 몸은 가볍다.
이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오래갈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의 나는
이 선택을 크게 선언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보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채로.
선택이란
언제나 옳아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정직하고 싶을 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은,
나는 이 선택을
잘 견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