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직은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중입니다

설득보다 다짐에 가까운 생활 실험

by 손샤인

비건 프로젝트 4일 차다.

아직은 ‘익숙함’보다

‘의식함’이 먼저 오는 시기다.


잠들기 전,

냉장고를 열어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과일, 채소, 두유, 영양제.

부족한 것들은 주문했다.


크게 말하지는 않았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을 땐

동료들이 불편해할까 봐

도시락을 싸왔다.


아직은

가족 말고는 모른다.


아침과 점심은 두유로,

중간중간 오이와 당근을 먹었다.

생수도 평소보다 더 자주 마셨다.


한 가지 분명해진 변화가 있다면,

음식을 먹기 전

‘이게 먹어도 되는 걸까’를

한 번 더 검색해 보는 습관.

그리고

내가 먹을 건

내가 준비해서 다닌다는 선택이다.


퇴근 후 셔플을 할 땐

혹시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몸은 오히려 가벼웠다.

생각보다 괜찮았고,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집에 오니

남편이 두부를 구워주었다.

귤을 먹고,

영양제도 챙겼다.


두유로 만든 그릭요구르트는

아무리 시도해도

도저히 입에 맞지 않았다.

그건 그냥

지금은 아닌 걸로 두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며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선택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자랑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비건이라는 선택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선언이 아니라

나의 다짐이라는 걸

나 스스로에게 주지시키게 된다.


생각보다

비건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마 음식 선택에 대한

‘제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약속에 가깝다.


오늘은 명절 둘째 날.

어머님이 갈비찜을 하셨다.

나는 먹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부드럽게 흘러갔다.


괜히 설명하지 않았고,

괜히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작은 위기 하나를

기분 좋게 넘겼다.


명절 이동 중

휴게소에서도

쓸데없이 군것질하지 않았다.

가방 안에는

두유와 당근.

이제는 그게

나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됐다.


비건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정체성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오는 다짐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동물을 너무 쉽게 해치는 세상에서

나는 그저

조금 덜 해치며 살고 싶어졌다.


동물에게

사람이 꽃이 될 수는 없을까.

그 질문 하나로

이 연습은 시작되었다.


아직은 조심스럽게,

아직은 서툴게.


크게 말하지 않고

냉장고 앞에서만

나에게 솔직해지는 중이다.


이번 주의 나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덜 해치고 싶어 한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이 연습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 치킨 대신 누룽지를,

무심함 대신 의식을 선택한 하루.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조금 따뜻해졌다. >


이 글은 ‘덜 해치며 사는 연습’ 매거진의 연재 글입니다.

매주 일요일, 흔들림까지 포함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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