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나였다
지난주 저녁 메뉴는 훈제오리볶음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적였다.
그 순간, 마치 전기 먹은 뱀장어처럼 화들짝 놀라
젓가락을 집어던졌다.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오래된 습관이었다.
삼십 년 넘게 반복해 온 손의 기억이
생각보다 빠르게 먼저 움직였을 뿐.
요즘은 셔플 수업이 유난히 많다.
퇴근 후 기본 두 시간, 일주일에 6일은 춤을 춘다.
땀은 쏟아지고 살은 조금 더 빠졌다.
오빠는 낮고 동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강 해치면 안 돼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 힘들면 내가 말할게.”
그날 저녁, 결국 치킨을 시켰다.
나 때문에 오빠도, 아이들도 괜히 부실해진 건 아닐까 싶어서.
식탁 위에 놓인 치킨에서 따뜻한 냄새가 올라왔다.
침이 꼴까닥 넘어갔다.
그게 끝이었다.
먹고 싶은 욕망보다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낮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유기견 덕구의 이야기를 보았다. 어떤 사람이 덕구로 술을 담그겠다며 잡으려다
도망치는 덕구의 꼬리를 붙잡았고, 그 꼬리는 다쳤다.
시간이 흐르며 염증이 되었고, 끝내 괴사가 진행되어
꼬리는 잘려 나갔다.
나는 화면을 한참 내려놓지 못했다.
아프다는 말도 못 했을 꼬리.
도망칠 수 없었던 몸.
그 작은 생명이 겪었을 공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그 순간,
다시 알았다.
왜 내가
꽃이 되기로 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꽃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강요는 또 다른 폭력이니까.
비건이 옳다고
설명하지도 않는다.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먼저 조용히 바뀔 뿐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나이니까.
꽃은
자기 향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피어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직 완전한 꽃은 아니다.
훈제오리 앞에서 놀라고, 치킨 앞에서 침을 삼키는
여전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적어도 눈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프다는 신호를
모른 척하지 않는 사람.
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이 꽃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우선,
내가 되어야 한다.
조용히.
천천히.
설명 없이.
오늘도
나는
나로서 피어 본다.
꽃이 되겠다는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오늘 한 끼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