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기로 한 날 25일차
우리 엄마는 개띠였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는 강아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포대기에 강아지를 업고 다녔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웃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강아지는 가족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평생 강아지를 키우셨다.
마당 한쪽에 작은 집을 만들어 주고 밥을 챙겨주고
가끔은 사람처럼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음식은
보신탕이었다.
어릴 때 나는 그 장면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 엄마는 보신탕집을 찾았고 아빠는 그 옆에서 삼계탕을 드셨다. 아빠는 보신탕을 안 드셨다.
하지만 삐진 엄마를 달래는 방법은 언제나 같았다.
“보신탕 먹으러 갈까?”
그러면 엄마의 표정이 금방 풀렸다.
어린 나는 그 장면을 그냥 가족의 한 장면으로만
기억했다.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강아지를 키우셨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보신탕을 좋아하셨다.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그 모순을 묻지 않았다.
어쩌면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비건을 선택하면서 가장 먼저 올라온 감정은
이상하게도 죄책감이었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왜 이제야 생각했을까.
그동안 내가 아무렇지 않게 먹어온 것들.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약속하기 위해 비건을 선택했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다만 이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해보고 싶었다.
오늘로 25일째다.
아직 초보 비건이다.
요즘 운동량이 많아서 가끔 기운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내 의지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몸은 더 가벼워졌다.
그리고 음식에 대해 전보다 훨씬 관심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뭘 먹지?”였다면
지금은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생각보다 많다.
콩으로 만든 음식들.
채소들.
견과류.
곡물들.
나는 요즘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새로 발견하는 중이다.
엄마는 강아지를 사랑하면서도 보신탕을 좋아했던 분이었다.
나는 강아지를 사랑해서 비건이 되려는 사람이다.
어쩌면 세대가 달라서일 수도 있고 내가 늦게 배운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각각 존중하려고 한다.
엄마의 삶은 엄마의 삶이고
나의 선택은 나의 선택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거창한 다짐 대신 작은 선택
하나를 한다.
오늘 한 끼.
그 한 끼가 나의 방식으로 세상에 조금 덜 미안한 방법이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도
꽃이 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