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무게를 이제야 이해합니다

[100-07]

by 손샤인

아버지는 평생 ‘가장’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은 분이었다. 4급 행정사무관이라는 자리는 밖에서 보기엔 단단하고 권위 있는 자리였겠지만, 정작 그 속에는 책임과 압박, 그리고 끝없이 버텨야 하는 고독이 있었을 것이다. 외아들로서의 무게까지 더해져 아버지가 짊어진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로웠을지 모른다. 집에서는 말수가 적고 보수적이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안에는 표현이 서툴 뿐인 따뜻함이 있었다. 가끔 던지는 짧은 농담, 사소한 말장난, 이미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흘리던 미묘한 미소 같은 것들. 그 순간들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마음을 흔든다.


아버지는 딸들을 약하게 키우지 않았다. 세상은 너희를 봐주지 않으니 강해져야 한다며, 때로는 단단함을 강요하듯 말씀하셨지만 그 말이 결국 사랑이라는 걸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했다. 장난기 없는 얼굴로 건넸던 조언들, 어깨를 펴고 살라는 말, 울지 말라는 말… 그 모든 말은 사실 ‘아빠가 대신 아프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던 아버지의 하루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시작해서 같은 시간에 끝났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우선순위에 둔 적이 없었던 사람. 숨소리보다 책임이 먼저였던 사람.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는 결국 심장병과 뇌졸중으로 4년을 버티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 곁을 떠났다.


아버지가 떠난 지 벌써 십 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날은 너무 또렷하다. 문을 열면 아빠가 들어올 것 같고, 주말 아침이면 거실에서 라디오와 아빠의 기침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어느 날은 아빠 향기가 날 것 같아 갑자기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리움도 옅어진다고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내가 알게 된 건 단 하나다. 아버지는 직급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로 기억되는 사람이라는 것. 가장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고, 가족을 위해 흔들림 없이 버텼던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 힘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요즘 자주 생각한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버지의 무게와 품격, 말투와 걸음걸이, 숨결 같은 따뜻함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고. 그게 때로는 버팀목이 되고, 때로는 그리움이 되고, 때로는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뿌리가 된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마음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아빠가 더 그립다.

말 한마디라도, 눈빛 한 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을 만큼.

#백일백장 26기#책과 강연#책강대학

작가의 이전글내면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