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공통주제
어느 여름날의 내가 떠올랐다.
계곡으로 놀러 가는 날, 아빠 오토바이 뒤에 앉아
두 팔로 아빠 허리를 조심스럽게 감싸고 있던 작은 나.
엔진 소리와 바람 냄새, 그리고 아빠 등에서 나던 햇볕 냄새까지 모두 내 마음속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빠는 공무원이셨다.
말수 적고 보수적이고, 때론 엄격한 분이었지만
어린 나에게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앞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나는 괜히 뒤꿈치를 들썩이며 어깨가 으쓱해졌다.
잘생긴 아빠가 너무 자랑스러웠던 시절.
나는 그때의 아이가 서 있는 모습을 스쳐 지나가다 멈춘다. 살짝 굽은 어깨와 무슨 말을 꾹 참는 오래된 표정.
나는 그 아이 앞으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지금은 어떤 마음인데…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니?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든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눈빛. 그 오랜 시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을 작은 어깨에 혼자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 곁에 앉아 천천히 속삭인다.
“은영아, 너 정말 잘 버텼어.
아빠 등 뒤에서 느끼던 그 든든함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너는 혼자서 잘 살아냈어. 무서웠을 텐데, 외로웠을 텐데… 정말 대견하다.”
부모님은 이제 두 분 다 하늘에 계신다.
가끔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낯선 공기가 가슴을 스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니들과 셔플을 춘다.
발끝이 리듬을 타고, 땀이 흐르고, 서로의 숨이 닿는 그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님을 다시 느낀다.
“앞으로 넌 어떤 ‘나’가 되고 싶어?”
내가 아이에게 묻자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 조용히 대답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는 사람.”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게 우리 앞으로의 길이다. 춤을 추며, 글을 쓰며 서로 기대며 우리는 다시 연결될 것이다.
내면 아이에게 말을 건다는 건 과거의 나를 데리고
현재의 나에게로 천천히 돌아오는 일.
오늘 나는 그 작은 나를 꼭 안아 지금의 나에게 데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은영아, 너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혼자가 아니야.”
어린 시절 아빠 오토바이 뒤에서 느끼던 바람, 그 바람이 여전히 내 등을 밀어주는 것 같다. 부모님은 떠났지만 그 사랑의 흔적은 내 안에 남았다.
그 흔적을 품은 채, 나는 오늘도 흔들리며 살아낸다.
내면의 아이와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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